Chelsea Simpson

[소설-일반]인간 문제 by 강경애(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7권)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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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꺼내든 문학과 지성사 한국문학전집. 작년 오늘, <레디메이드 인생> 이후로 꼭 1년만이다. 먼저 손댄 건 나도향의 중단편선 <벙어리 삼룡이>였으나, 한국 낭만주의 소설 특유의 비극성이 어쩐지 신파극 같은 청승맞음으로 다가와서 두어 편 읽고 덮어두었다. 지금 읽기는 답답해서 가을 정도 되어야 꺼낼 듯하다.

 

강경애(1906~1944)

강경애. 그녀는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작문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논설, 소설 등을 꾸준히 집필해왔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카프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열렬한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도 그러한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녀의 대표작 <인간 문제> 역시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계급 갈등을 묘사하는 소설이다.

 

전형적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평면적 갈등

소설은 '용연'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전반부와, 서울,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목적성이 강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특성상, 인물들의 성격은 평면적이고, 갈등의 양상 역시 전형적이다. 등장인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의뭉스럽고 탐욕 가득한 지주 덕호, 물질적 욕망에 충실한 덕호의 딸 옥점 등(이상 유산계급)과, 다소 거칠지만 순박한 첫째, 순진하고 성실한 선비 등(이상 무산계급)이 그에 해당한다. 각 인물들의 특징이 너무나도 정형화되어 있다보니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1차원적인 것에 그치고, 따라서 내용의 얼개도 빈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 문제> 속의 갈등은 자본 아니면 성적 착취로 인해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강경애는 전자에 대해서는 분량을 할애해가며 구체적으로 적고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허나 여성 작가여서인지 그 상황을 둘러싼 불쾌한 분위기를 짧은 문장으로도 살갗에 와닿도록 생생하게 전달한다. 학교를 보내준다는 덕호의 말만 믿고 기대하다가 그에게 유린당하는 선비의 모습을 보면서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것 같았다. 취기 어린 덕호의 더운 숨이 선비의 볼에 후끈하게 끼칠 때는 나도 모르게 진저리치고 말았다. 너무 싫었다. 그냥 책을 덮고 밖에 나가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근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런 요소가 당시의 문학에 필수적으로 등장해야하는 것이었을까.

 

절대 빈곤의 굴레 : '어떻게 살 것'인지가 아닌 '어떻게 살아남을 것' 인지에 대한 고민

<인간 문제>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을 통해 계급 의식을 조명하고 있다. 이는 작품 첫머리에 등장하는 원소(怨沼) 전설로써 더욱 강조된다. 덕호는 면역소(면사무소)와 주재소(파출소)의 비호를 받고 있기에 경제적 착취를 일삼는 유산 계급 뿐만 아니라, 식민 통치를 지지하는 친일파의 성격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계급 간의 갈등은 단순한 이권 다툼이 아니라 생사여부가 걸린 문제로 대두된다. 무산 계급의 대표격인 첫째네는 하루 저녁을 때울 요깃거리도 마련하지 못해 얻어온 밥으로 근근이 허기를 면한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신경이 날카로워진 첫째와 그의 어머니 앞에서, 윤리라든가 겸양은 사치스러운 가치일 뿐이다. 이들에게 삶이란 철저하게 처절한 투쟁인 셈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상은, 뼈아픈 현실을 맞닥뜨리는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찌르는 듯한 햇빛에 눈을 찡그리게 되는 그런 고통을 안겨준다.

 

예스러운 표현을 접할 때의 기쁨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참아가며 이 책을 읽어내려간 데에는, 예스러운 표현에 대한 갈증이 한 몫 했다. 강경애의 문장은 황해도 방언이 섞여 있어 눈에 설면서도 곱고 아기자기하다. 종이에 적힌 활자를 혀끝에 올려 소리내어 읽을 때, 입술 밖으로 굴러나오는 어휘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져서 아껴가며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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