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문학]기형도 전집 by 기형도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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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전집

저자
기형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1999-03-0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간행사]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온통 문학에 대한 열정에 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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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1960~1989)

쓸쓸함이 만져지는 기형도 전집. 그는 스스로 그의 작품집을 엮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기형도 전집>은 그 동안 출간되었던 그의 책 세 권을 한데 묶어 새로이 정리한 저서이다.

기형도는 1960년 출생, 학창 시절 줄곧 전교 최상위권을 달렸고, 1979년 연세대 정법계열에 입학 후 교내 문학 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 입회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 후, 다양한 습작을 쓰고,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 졸업 직전인 이듬해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된다. 그해 중앙일보 신문사에서 수습을 마치고 정치부에 배속되었다가 다음 해에 문화부로 자리를 옮기고 89년까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했으나, 당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된다. 이 때 그는 29세 생일을 불과 엿새 앞두고 있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기형도 전집』에는 사망한 해 5월에 출간된『입 속의 검은 잎』, 5주기를 맞아 94년 2월에 출간된『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그리고 미발표작 시 20편이 담겨있다. 그의 시 속에는 유년 시절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급격하게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생계에 곤란을 겪었던 아픔과, 손위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상흔이 새겨져 있다. 짤막한 시들도 있지만 「안개」, 「위험한 家系 · 1969」, 「폭풍의 언덕」, 「우리 동네 목사님」처럼  산문에 가까운 작품이 눈에 띈다. 특히 「위험한 家系 · 1969」, 「폭풍의 언덕」은 그의 유년 시절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한 내용의 작품이다.

시를 감상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독특한 비유 방식이다. 중학교 때 직유법, 은유법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직유는 박목월의 「나그네」, 은유는 김동명의 「내 마음은」이 대표적이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나그네」)', '내 마음은 호수요(「내 마음은」)'처럼 비유하는 대상과 실제 표현하는 대상의 비슷한 속성을 잡아내어 빗대는 표현 방식이다. 그런데 기형도는 정말로 생뚱맞은, 그가 비유하기 전까지는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 같은 느낌의 독특한 표현들을 찾아낸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鳥致院」)',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오후 4시의 희망」)',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위험한 家系 · 1969」)등 낯선 표현이 속뜻을 날서게 해준다.


고교 시절에 나에게 신선한 울림을 주었던 「빈 집」. 사랑과 아픔을 나눈 사물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부르짖는 문체가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새겨졌었다. 첫머리에서 '사랑을 잃고'난 뒤에 비로소 '나'가 등장하기에, 이별에 대한 아픔으로 자아를 잠시 놓친 것 마냥 쓸쓸하다.

 

중풍으로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어머니가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당시를 그대로 그린듯한 「엄마 걱정」. 

어머니가 이고 가신 '열무 삼십 단'과 '시든 해', '배춧잎 같은 발소리'의 이미지가 연결되고, '찬밥', '금간 창 틈', '고요한 빗소리', '빈방'이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펐던 어린 시절의 자아를 보여준다.


조숙한 청년이 안기는 쓸쓸함

시가 워낙 눈길을 사로잡긴 하나, 소설도 좋은 작품들이다. 다만 마음 편하게 읽어내려가기 쉽지는 않다. 그의 아픈 유년시절을 건드리는 「영하의 바람」을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끼는게 아니라 씁쓸한 아픔이 느껴졌다.

예전에 국문학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문학이라는 것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음놓고 그저 재미있게 읽기만 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갈등을 유발하고 읽는이의 아픈 곳을 건드려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희희낙락하고 마는 전개방식을 취하지 않고, 어딘가 씁쓸하고, 애달프고, 부끄럽고, 외로운 심성을 가지고 작품을 그려냈다. 그래서 기형도의 작품은 재미있게, 가볍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개운치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읽게된다.

「환상일지」나 「어떤 신춘문예」처럼 성인의 시선에서 쓰여진 작품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처럼 건조하고 안개처럼 싸늘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의 단면을 서걱서걱 써내려간 느낌이다. (현대 사회라고 썼다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에는 모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수정했다.)

 

 산문은 그의 여행기, 일기, 간단한 메모와 서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의 여행기인 「짧은 여행의 기록」속에 등장하는 장정일이라는 소년과의 만남이다. 이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게 들린다면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만 있다면」이라는 시를 기억할 것이다. 장정일 작가, 그의 시는 김춘수의 「꽃」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여행 속에서 기형도는 장정일과의 만남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쯤에서 각설하고 다시 산문으로 돌아가자면, 그의 글 속에서는 '급격하게 철이 들어버린 20대 청년'이 보인다.

청년, 청춘을 목놓아 외치는 요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그는 많은 상념에 잠겨 있었고, 고뇌와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가 쓴 작품을 읽다보면 바바리 코오트를 입고 비가 개인 늦가을의 동숭동 거리를 걷는 대학생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런 어른스러운 면모들은, 기형도여서 그런 것일까, 그 당시의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속성일까.

 

쓸쓸하고, 외롭고, 싸늘했던 기형도의 삶, 그의 또다른 작품을 만날 수 없는게 못내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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