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일반]노인과 바다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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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어떤 분이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그 분의 닉네임을 보니 이 책이 생각나서 본가에 갔을 때 다시금 읽어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번 읽었던 책이라 오랜만에 봐도 내 집에 온 듯 편안하고 익숙했다.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올리느라 갖은 애를 쓰는 내용, 후반부는 낚은 고기를 덴투소라고 불리는 상어 떼에게 뜯기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노인과 바다>의 번역본을 보면 출판사마다 제각각인데, 첫 문장만 봐도 그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재미삼아 훑어볼만해서 옮겨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헤밍웨이는 미국 일리노이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후 수습기자로 일하다가, 1차 세계 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휴전 후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애즈라 파운드 등과 교류했다. 『태양은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등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작가 생명이 끝났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1952)로 이듬해 퓰리처 상 수상 및 1954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회복했다. 이후 1959년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우을증,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리다 1961년 엽총으로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난 저놈을 꼭 죽이고 말테야. 아무리 크고 아무리 멋진 놈이라도 말이지."

하드보일드 문학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답게, <노인과 바다>의 문장은 호흡이 짧고 감정이 배제되어있다. 그러나 소설에 전반적으로 감도는 분위기에서 딱딱함보다는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는 주인공 산티아고가 삶을 대하는 태도의 강건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내면의 예민한 감수성에서 배어나오는 것일 게다. 헤밍웨이는 무심한 듯 담백한 문체로 작품을 전개해나감으로써, 분위기가 마냥 감성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지양한다. 이 간결한 문장이 늙은 어부의 힘차고 강인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하지만 난 저놈을 꼭 죽이고 말 테야. 아무리 크고 아무리 멋진 놈이라도 말이지."

소제목에도 인용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말 한 마디를 통해, 산티아고는 자신이 낚고자 하는 물고기(청새치)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그 사냥감을 꼭 포획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무려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한 어부'에게 이번 일은 일종의 명예회복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켜보는 나 역시 뱃전에 앉아 월척을 낚아올리는 거친 바다사나이가 된 기분이 든다. 

 

'지배하는 인간'이 아닌, '투쟁하는 인간'

<노인과 바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바다는, 산티아고에게는 생업을 이어가는 기반이자, 生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목표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그가 청새치를 낚아올리는 과정은 일종의 전투인 동시에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한 물고기에 도전하고, 자신의 기력을 앗아가는 세월에 도전하는 행위인 셈이다. 헤밍웨이는 이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패자라는 인식과는 달리, 다른 존재들과 동등하게 먹이사슬의 한 축을 이루며 생태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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