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예술]르네 마그리트 by 수지 개블릭

2017.11.16 06:30

<교사> 1954

내가 현대 화가 중 가장 사랑하는 작가 르네 마그리트(환상을 그려내는 롭 곤살베스도, 일러스트 작가인 장 자크 상페도 좋아하고, 근대 화가 중에서는 반 고흐와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보면 가슴이 일렁거린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는 것은, 그의 그림을 해석하기 힘든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저 마그리트가 그려내는 세계를 보고 있으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인상이다.

그의 작품이 선사하는 기묘함은 파격적인 표현보다는 상식을 깨는 배치와 전환에서 온다. 평범한 오브제를 익숙하지 않은 위치에 두는 것의 역설, 그것이 주는 신선한 충격이 마그리트 고유의 예술관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에 도판이 무려 228점. 사실은 그래서 이 책의 분류를 '그림'으로 할까 아니면 '교양'으로 할까 고민을 잠시 했다. 그림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작가의 생애와 철학을 설명하는 데 더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에 단순한 화첩으로 간주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교양'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내게는 별도로 구입한 마그리트의 도록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그걸 '그림'책으로 따로 기록할 예정이다.


수지 개블릭 Suzi Gablik(1934~)

수지 개블릭(Suzi Gablik)은 1934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로버트 마더웰과 함께 공부하였으며 헌터 칼리지와 블랙 마운틴 칼리에서 수학하였다. 그녀는 마그리트의 작품에 대해 10년 이상 면밀한 지식을 쌓았고 1959-1960년 브뤼셀의 작가 집에서 8개월 동안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녀는 사우스 대학, 버지니아 연방 대학, 산타 바바라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가르쳤고 1989-1990년 버지니아 테크놀러지의 미술과학 대학의 C. C. 가빈 객원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는 존 러셀과 공저한 <재규정된 팝 아트>, <미술에서의 진보>, <모더니즘은 실패하였는가?>, <미술의 매혹> 등이 있다.

-본저 책날개에서 인용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1898~1967)

마그리트는 고통과 불행의 근본 원인인 '우울증'으로 대단히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그 우울증에 매몰되는 대신 그 병적인 고통을 그의 모든 행동, 삶과 작업에 투영해 형이상학적으로 활용했다. 그로 인해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에서는 거의 천부적인 싫증이 엿보였으며, 이와 일맥상통하는 권태, 피로, 혐오감 그 중 어딘가에 존재하는 감정들이 그림 속에서 넘실거렸다.

마그리트에게는 짓궂은―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심술궂은―면도 있었는데, 그의 작품을 해석하려는 이들에게 "당신이 저보다 더 운이 좋으십니다."라고 종종 받아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사실 이보다 더 그를 불쾌하게 하는 일은 없었고,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나의 그림을 상징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그 물건 속에서 상징적 의도를 찾지 않지만, 그림을 볼 때는 그 용도를 찾을 수 없고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 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을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함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버리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본저 p.11에서 인용


그림 속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 같은 것이 '빌보케 bilboquet'이다. <길 잃은 기수> 1940

팰러스트레이드 phallustrade : 오브제가 빚어내는 연금술

마그리트의 오브제를 표현하는데 팰러스트레이드(phallustrade)보다 완벽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는 독일 초현실주의의 거장인 막스 에른스트가 콜라주해 만들어낸 합성어이다. 에른스트에 따르면 팰러스트레이드는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a, 이탈리아의 고속도로), 벨러스트레이드(balustrade, 난간), 그리고 약간의 팰러스(phallus, 남근)로 구성된 산물이다.

마그리트는 빌보케―마그리트는 난간을 '빌보케 bilboquet'라고 일컬었다―라는 오브제를 그의 작품에 자주 활용했다. 빌보케는 말 그대로 거대한 난간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체스의 폰(pawn)처럼 줄지어 놓이는 등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빌보케에 눈을 박아넣거나 눕히는 등 의인화시켜, 마치 이 오브제가 파수꾼이나 목격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그려내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현실과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공존시키기 위해 이처럼 수수께끼와 같이 병치된 오브제를 작품 속에 박아넣었다. 이는 배경의 다른 요소들과 결합해,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착시 현상과 함께 감정의 교란을 불러일으킨다.


<단어의 사용 Ⅰ> 1928~1929

이미지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현대의 미술가 대다수는 미술의 기능이 현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에 그칠 뿐이라는 고전적 사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제 미술은 '재현하기'를 탈피해 표현 그 자체로서, 고유한 오브제로 존재한다. 따라서 회화의 현대적 의의는 '재현적 매개물이나 현실에 대한 시각적인 착각 없이도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총체'로 변모하였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온 '현실을 보는 창문'으로써의 회화가 이제는 그 자체로 성립하는 예술의 개념을 지니게 된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서 이미지의 애매모호함은 현실과 작품 속 착시적 공간의 대립에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단적인 예로 위 작품에서 <단어의 사용 Ⅰ>은 파이프를 그리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음으로써 오브제와 그 상징 사이의 괴리감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지와 실제 사물이 혼동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단어는 오브제를 표현하는 기능을 하지 않고 무관한 채로 남아있다.


<인간의 조건 Ⅰ> 1933

마그리트의 세계관은 당대의 철학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의 관념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경험 세계에 적합한 전달 체계일지라도 반드시 언어와 현실이 일대일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마그리트 역시 이와 유사하게 대상과 그 명칭의 관계는 임의로 세워진 것일 뿐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꿈의 열쇠>라는 작품 속에서도 그는 서로 관계 없는 오브제를 나열하면서 의도적으로 불일치하는 명칭을 붙였다(가방 그림 밑에 하늘 le ciel이라고 적고, 나뭇잎 그림 밑에 탁자 la table 이라고 적는 등).


"나는 인간이 인류의 미래나 현재, 그 어느것도 결정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우주에 대하여 책임이 있지만 이것이 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함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나의 삶과 예술의 연관 관계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삶이 내게 무엇인가를 하게끔 강요하고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외에는 정말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순수' 시나 '순수' 회화와는 관계가 없다. 누군가의 희망을 고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혹의 힘이기 때문이다."

-본저 p.180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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