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소송 by 프란츠 카프카 본문

[소설]소송 by 프란츠 카프카

첼시♬ 2018.01.17 06:30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 프라하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독일계 인문 학교를 거쳐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한 뒤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카프카는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에서 법률 고문으로 일하며 작품 집필도 꾸준히 했다. 1919년 각혈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요양소와 여동생의 집을 전전하다가 결국 1924년, 41세의 나이에 후두 결핵으로 요절했다.

그는 프라하의 상류층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오니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그의 글은 세간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출판된 소수의 작품도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소송』이 포함된 세 편의 미완성 작품―『소송』, 『성』, 『실종자』―역시 카프카 사후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출판되었다.


-본저 책날개에서 인용 후 2차 가공


이전에 카프카 단편집에 대해 기록하면서 그는 '남달리 자아의 밑바닥에 진흙처럼 끈적끈적하게 쌓인 어둡고 습한 면을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짙다. 작품 속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카프카가 그 자신의 생을 직접적으로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자신을 화자로 삼아 시를 한 편 쓰는 듯, 수필을 적어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평한 적이 있다. 『소송』의 주인공인 요제프 K 역시 카프카 스스로를 투영하는 듯 그와 같은 이니셜을 공유한다.

참고로 작품의 원제인 『Der Prozeß』은 독일어로 '소송'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에서 '심판'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국문판으로도 『심판』으로 출간된 판본이 많다.


『변신』과 『이방인』 그 어딘가의 사이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는 평소처럼 출근하려던 아침을 색다르게 맞이한다. 그에게 아침을 가져다주던 가정부 안나는 오지 않았다. 대신 웬 낯선 남자가 들어와 K가 체포된 몸이며 자신은 그를 통제하기 위해 파견된 감시원이라고 알린다. K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감시원들 역시 그가 체포된 이유를 전혀 모른 채 주어진 명령에 따를 뿐이다.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략)…'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변신』 첫머리 by 프란츠 카프카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 첫머리 by 알베르 카뮈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그에게 방을 세놓은 브루바흐 부인의 가정부는 매일 아침 8시면 그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곤 했는데 이날따라 오지 않았다.

『소송』 첫머리 by 프란츠 카프카


작품 초입의 짧은 호흡, 그리고 긴장감이 배제되다 못해 거세된 듯 메마른 문장들 때문인지, 『소송』 위로 같은 작가의 『변신』과 카뮈의 『이방인』이 겹쳐졌다. 잠에서 깼을 때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감은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의 그것을 연상케 했고, 간결하게 끊어지는 문장은 『이방인』을 닮은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닥친 사건 이후 어그러지는 주인공의 일상,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점점 더 그를 옥죄어오는 주변의 요소 등을 보면서 세 작품이 마치 형제인 듯 더 비슷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유도 실체도 없는 '소송'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는 제재 '소송'. 요제프 K를 체포하고 감시원을 보내고 그를 재판정으로 소환하는 이 소송의 일련과정을 이끌어가는 법원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K를 관청으로 불러내지만, 그에게 언제 어디로 나오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하지도 않고, 그가 어째서 체포당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가 출두한 법원은 구석진 다락방에 있는 한편, K에게 체포 사실을 알리러 온 감시원부터 법원 공무원들까지 공무 집행보다는 피고인의 소유물을 슬쩍 한다든지 남의 밥을 훔쳐먹는 등 개인의 잇속을 차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설상가상으로 법원 쪽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하는 여인들은 모두 틈만 나면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교태를 남발한다. 일반적인 사법체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식과 동떨어진 일들만 연이어 벌어진다.


주인공인 요제프 K 역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소송 절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듯 하지만, 그가 이따금 보여주는 행동은 본래의 의도조차도 의심스러워 보이게끔 만든다. K는 같은 하숙집에 있는 뷔르스트너 양에게 짐승이 갈증을 해결하듯 달려들어 키스를 하거나, 법원 정리의 아내와 불륜을 자행하는 한편, 변호사의 간병인 레니와의 밀회 등을 즐긴다. 처음에는 K가 성적인 측면을 권력으로 이용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동기로 이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육체적인 욕망만 충족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법 앞에서> : 문지기 전설, 그리고 카프카 스스로에 대한 단죄

소설은 <법 앞에서>라는 우화를 놓고 K와 사제가 논쟁을 벌이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한 시골 남자는 지금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질문하고, 그 앞을 지키는 문지기는 지금은 안 된다고 답하면서도 나중에는 혹시 모른다고 덧붙인다. 선문답 같은 물음과 대답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문지기가 지키는 '법'이라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한 은유로 쓰였으리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전략) 한 신사의 양손이 K의 목을 눌렀고, 그사이 다른 신사는 칼로 그의 심장을 찔러 두 번을 돌렸다. 꺼져가는 눈빛으로 K는 두 신사가 바로 그의 코 앞에서 서로 뺨을 댄 채로 결정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다. 「개 같다!」 그가 말했다. 치욕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았다.

-본저 p.295에서 인용


『소송』 속에서의 체포 역시 단순한 물리적 체포 뿐만아니라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카프카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이 '소송'이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유죄 선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유일하게 애착을 갖고있었던 일인 문학에 전념하기를 원했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이와 상충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 때문에 그는 약혼녀인 펠리처 바우어와 파혼을 결행했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에 대해 깊은 죄의식을 품게 된다.

문학을 추구하는 삶과 결혼에 대한 불안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에서, 그는 '범인처럼 포승줄로 꽁꽁 묶인 듯한 느낌'이라고 일기에 적기도 한다. '결혼'이라는―그 시대를 기준으로 본다면―평범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 했다는 불편함, 전 약혼녀의 가문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 등이 그의 일기 속에서 '호텔의 법정',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임' 등과 같은 구절로 표출된다. 이것이 카프카가 스스로를 처벌받아 마땅한 범인으로 규정짓게 하고, 이러한 내적 갈등이 요제프 K라는 인물을 통해 작품 속에서 발현된다.


4 Comments
  • BlogIcon 보심 2018.01.17 23:20 신고 아직 카프카의 작품을 읽지 못했는데, 그 유명하다는 괴물과 이방인을 겹쳐 놓은 듯한 느낌을 받으셨다니. 카프카의 첫 책으로 괜찮을까요? 마침 읽고 있는 책이 끝에 다달아서 다음 책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__+ 추리소설물에 빠져 지내는데, 추리적인 요소와 작가의 삶과 고민이 투영된 것 같아 읽고 싶어지네요.
  • BlogIcon 첼시♬ 2018.01.18 22:31 신고 제가 이번 글에 적은 『소송』이란 작품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 난무하는 안개 같은 소설이에요.
    오히려 『변신』이 좀더 구체적인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프카 단편집 중에 『변신』이 수록된 것을 먼저 접해보시고 그 이후에 『소송』을 읽으시는 걸 추천드려요.
    그 순서대로 읽는 게 카프카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좀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 같아요. :)
  • BlogIcon 보심 2018.01.19 23:00 신고 오홋 역시 읽어본 사람의 조언은 언제나 고맙네요! 에세이를 하나 주문한 게 있어서 그걸 다 읽고 고민해봐야겠어요 ㅎㅎ
  • BlogIcon 첼시♬ 2018.01.21 15:38 신고 조오금 풍자가 섞인 블랙 유머 같은 것도 괜찮으시면 고골리의 작품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외투>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코>입니다.
    제 취향과 보심님 취향이 다르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좀 조심스럽네요. ㅋㅋ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