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일반]여자의 일생 by 모파상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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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Guy de Maupassant(1850-1893)

모파상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격동 한가운데―시대와 장소 모두―인 19세기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문예사조 역시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듯 계급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와 사회적 병폐 및 인간 소외 현상을 고발하는 '자연주의', 현실 앞에 무기력한 비관적 개인들의 '세기말적 염세주의'가 복합적으로 득세했으며, 모파상 역시 그 흐름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는 삶의 진실과 인간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자세로 고통받는 인간들의 일생을 대필했다. 대표작으로는 「여자의 일생」, 「비계 덩어리」, 「목걸이」, 「두 친구」, 「쥘르 삼촌」 등이 있다.

-본저 인용 후 2차 가공


모파상의 작품집 『여자의 일생』에는 동명의 소설 「여자의 일생」과 「비계 덩어리 Boule de Suif」, 「테리에 집」, 「산막」, 「목걸이」 순으로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이중 「비계 덩어리 Boule de Suif」는 원제가 단순한 보통 명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인물인 엘리자베스 루세를 뜻하는 고유 명사이기도 하기에 부러 원제를 밝혀 적어둔다.


자연주의 : 너무나 날카롭기에 그만큼 뼈아픈 고발

...도데와 모파상은 활동 연대도 엇비슷하고, 둘 다 자연주의 작가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데가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하여 서민적이고 목가적인 작품을 썼다면, 모파상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 작품을 주로 집필했다고 볼 수 있다(「목걸이」, 「비계덩어리」 등).

특히나 도데의 작품 「당구」를 읽을 때는,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해 짓밟히는 개인의 운명이라는 공통 분모 때문에 모파상의 <비계덩어리(Boule de Suif)>가 생각났다(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읽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인 모양이다).


-이전 글 알퐁스 도데 단편선 에서 인용


이전에 알퐁스 도데 단편집에 대해 적으면서 모파상이 떠오른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모파상과 도데를 관통하는 문예 사조는 '자연주의'이다. 평화로운 전원을 연상시키는 어휘와는 달리 자연주의가 그려내는 현실은 냉혹하고,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약자의 모습은 처절하다.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서 목덜미가 뜯겨나가는 피식자와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피를 핥는 포식자의 참상을 미화 없이 보여주듯, 자연주의 작품들은 잔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국내에서는 현진건과 김동인이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볼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운수 좋은 날」(현진건)은 인력거꾼 '김 첨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앓고 있는 아내와 젖먹이 아들을 두고 찜찜한 기분으로 인력거끌이에 나서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삯을 후하게 쳐주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두둑한 주머니를 차고 귀가한다. 수지맞는 하루를 보냈지만 설렁탕과 함께 집에 들어서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서운 적막 속에 누워있는 아내의 주검과 빈 젖을 빨고 있는 어린 아들이었다.

「감자」(김동인) 역시 하층민 여성인 '복녀'를 통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억압받는 여인의 삶을 묘사한다. 그녀는 나름의 윤리관이 있는 가문에서 자라난 여인이었지만, 게으른 남편과 가난한 빈민의 삶에 지쳐 몸을 팔아 쉽고 편안하게 돈을 벌며 '한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허나 그녀의 짧은 삶은 중국인 왕서방을 만나 '수동적 도구'에서 벗어나려 하는 순간 벌레처럼 짓밟히게 된다.


불행한 운명의 굴레에 얽힌 '여인들'

자연주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소 많은 분량을 할애해 국내 작가에 대해 적었는데―대표 작가인 현진건과 김동인에 대해서는 어떤 글에서든 꼭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모파상이 다루는 대상은 김동인 작가 쪽에 좀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동인은 대표작인 「감자」 속 복녀를 비롯해 엘리자베트(「약한 자의 슬픔」), 금패(「눈을 겨우 뜰 때」), 김연실(「김연실전」), 곰네(「곰네」) 등 다양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모파상 역시 여러 여인과 그녀들을 얽매는 운명을 작품에 담아낸다. '잔느'는 꿈꾸던 사랑을 만나 세상의 행복을 다 얻은 듯 했지만, 결국 남편 줄리앙도, 애정을 쏟아 기르던 아들 폴도 떠나가고, 폴의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을 건다(「여자의 일생」). 엘리자베스 루세는 점령군인 프러시아 장교에게 몸을 내어주는 대가로 함께 이동하던 승객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만, 그들로부터 감사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경멸의 대상으로 조롱을 받는다(「비계 덩어리」). 마담과 다섯 여인들이 있는 테리에 집은 마을 남자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지만 막상 세간으로부터 그리 좋은 눈길을 받지는 못한다(「테리에 집」). 마틸드 르와젤은 꿈꾸기만 했던 화려한 무도회의 주인공이 되어 누구보다 주목받으며 행복해하지만, 친구로부터 빌린 목걸이를 분실하는 바람에 그 대가로 10년 동안이나 빚을 갚기 위해 허덕인다(「목걸이」).


모파상은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녀들의 운명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는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며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한 프랑스의 변화를 그저 '발전'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모파상이 몰락 귀족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냉철한 작가의 시선을 지니고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경제적·기술적·지식적인 진보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고, 이를 알아차린 사람에게 고통과 환멸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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