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데미안 by 헤르만 헤세

2018.07.23 06:30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1946년에 노벨문학상·괴테상을 수상했다. 그는 군국주의 독일에 대한 반항으로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오랜 인도 여행, 독일 나치스에 대한 저항 등을 통하여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내적 성찰과 동양적 신비에 대한 동경이 얽힌 소설을 썼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내면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넘기 어려운 큰 장애물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안팎의 분열이 헤세의 일생을 두고 문학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주요 작품으로 「향수」, 「수레바퀴 밑에서」,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지성과 사랑」, 「유리구슬 유희」 등이 있다. 


밀어내기 혹은 희석하기 : 사유의 범람

요즘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악몽. 그 내용은 공포라기보다는 컬트에 가까운 장르이기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도 묘하게 찝찝하고 역겨운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구정물이 튀어서 더럽혀진 옷은 갈아입으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깊게 배인 얼룩을 지우는 것은 길고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찌든 마음을 몇 번이고 비벼빨아 헹굼물이 맑아질 때까지 책을 읽는다. 튜브에 고여있는 찌꺼기를 빼내기 위해 고전을 밀어넣는 것이다. 굶주린 걸인이 식은밥을 게걸스럽게 뱃속에 욱여넣듯이 나는 책을 탐독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데미안』은 그런 의미에서 '정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문어체처럼 가지런하고 예스러운 표현들이 퍽 정다워서, 읽는 동안 침잠되어있던 마음결이 정돈되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지금 읽고 있는 데미안은 1994년 판본이다. 우리집에 오게 된 건 그 이후이겠지만 어쨌든 초등학생에게 이런 책을 읽으라고 선물한 나의 부모님은 당시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걸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 살풋 웃음이 배어나왔다.


대립의 미학 : 빛과 어둠, 혹은 지성과 사랑

『데미안』에는 동명의 소설 「데미안」과 함께 「지성과 사랑」까지 총 두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두 작품을 꿰는 기본 골자는 같다. '빛과 어둠', 혹은 '지성과 사랑'처럼 서로 대척점에 있는 가치를 견주어보며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헤세는 인간의 양극성과 이원성에 관심을 가지고, 대립된 가치가 정반합으로 승화되는 것을 작품으로 그려낸다. 이는 살아가면서 선과 악, 평화와 갈등, 금욕과 정념이 부딪치는 모순적 상황을 무수히 맞이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따스한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대변되는 '빛'의 세계에 머무르다가 프란츠 크로머라는 다소 불량한 동급생으로 인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괴로워한다. 그런 그를 구원해준 막스 데미안은 선악의 절대성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성과 사랑」에서도 이러한 두 세계관의 대립과 합치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냉철하고 지적인 수도자인 나르치스와 관능적이고 정념에 불타는 예술가 골드문트는 각자 완전히 다른 삶을 영위하지만, 언제나 서로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표한다. 골드문트가 해산하는 여인의 찡그린 얼굴을 보면서 고통과 환희가 결국은 통하는 감정임을 깨닫는 장면에서 그 정반합의 경이로움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도 즐거웠던 이유는 예스러운 표현 덕이기도 했다. 위 사진에서 데미안은 "그러나 그런 얘긴 그만두자!". "머리가 좋고 호감이 가는 소년과 나는 가끔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거다.". "대강 들어맞았니?"처럼 문어체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한다. 데미안이 마치 나를 부드럽게 위무하는 듯한 이런 장치들이 퍽 좋아서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성별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닌 중성적인 외모, 아무것도 강요하는 것 없지만 어쩐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품고 있는 데미안을 보면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를 떠올렸다. 도리안 그레이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한없이 슬기로웠더라면 데미안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으려나.


어떤 인간의 일생이건 간에 그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이르기 위한 하나의 도정이다. 실제로 가다 보면 넓고 큰 한길이 될지도 모르고, 좁고 가느다란 오솔길의 암시에 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이건 간에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된 선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자기가 되려고 애쓴다.

...(중략)...인간은 저마다 자기의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설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사자인 자기 자신밖에 없다.


- 본저 프롤로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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