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추리]네덜란드 살인사건 by 조르주 심농

2018.07.29 06:30

書田引水 : 사유의 범람

심신이 두루 지쳐 공허함에 허덕이다보니, 기갈을 해소하고자 근래에 가장 게걸스러운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텅빈 내면을 채우기 위해 거장의 두뇌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나날들. 수놓인 글자들을 매만지며 행간을 더듬는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기뻐지는 동시에 버겁기도 하다. 범람하는 탐독욕은 마침내 심농에게까지 미쳐서, 그동안 숙제처럼 느껴지던 매그레 시리즈의 일곱번째 권을 어렵게 꺼내들었다. 꼭 1년만이다.

여담이지만 이번 『네덜란드 살인사건』을 번역한 성귀수라는 분 성함이 익숙해서 태그를 돌려보니, 같은 시리즈의 제1권 『수상한 라트비아인』의 역자이기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이렇게 글로나마 재회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누누이 밝혀왔지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경찰의 수사일지를 재구성한, 추리와는 전혀 별개의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여타의 추리소설이 범행 수법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매그레 시리즈는 매그레 반장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을 좇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너댓 권 가까이 읽는 동안 그 사실에 적응하기가 제일 힘들었다. 깃을 올린 프록코트,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는 수상한 사내의 움직임 같은 걸 기대하고 펼친 책이었는데, 땀에 전 셔츠 자락, 밤샘 수사로 피로해진 책상 앞의 경찰공무원(...)들이 등장하니 자못 당황스럽기도 했고. 마치 내가 먹을 음식을 남의 부엌에서 조리하는 듯한 기분이어서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매그레 시리즈를 읽을 때와 감상문을 남길 때의 시차가 꽤 벌어진다. 이번에도 읽고 거의 한 달 만에 남기는 듯. 더 어릴 때 접한 책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친절한 장 뒤클로 씨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작품 속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당하는 장 뒤클로 교수가 소설 초반에 대강의 인물 정보를 정리해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자여, 자시는 窓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라는 의미로 해둔 건 아니고, 타국인 네덜란드까지 와서 수사할 매그레 반장―벨기에 형사―을 위해 추려놓은 정보이긴 하다.

사건은 피해자인 콘라트 포핑아와 그의 부인 리스버트, 처제 아니를 중심으로 한 포핑아 가족을 중심으로 일단 돌아간다. 콘라트는 장 뒤클로 교수가 연사로 나선 강연회가 끝난 뒤 총에 맞은 사체로 발견된다. 매그레 반장은 그와 어쩐지 수상한 관계였던 것 같은 처녀 베이트예 리번스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거리두기'가 제시하는 사건의 실마리

심농은 작중에서 내내 베이트예 리번스의 육체적인 매력을 부각시킨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이용하는 듯, 몸가짐마다 미소를 흘리며 짐짓 교태를 부린다. 매그레 반장은 베이트예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베이트예의 아버지인 리번스, 그리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해군사관학교 생도 코르넬리위스―이 조성하는 수상한 분위기를 탐지한다. 그리고 베이트예가 콘라트를 졸라 그와 함께 델프제일을 떠나려 했던 사실을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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