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양철북 by 귄터 그라스

2018.08.07 06:30

※이번 글은 '혐오'와 ''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현이 무수히 많으니, 원치 않으면 글을 닫아주세요.

귄터 그라스 Günter Grass(1927-2015)

귄터 그라스는 세계 1,2차 대전의 과도기인 1927년에 출생하여 청소년 시절에 전차병으로 직접 참전하기도 했다. 그는 회화와 스케치 뿐만 아니라 금속 조각술을 공부했으며 재즈 그룹 멤버로도 활약했다. 그라스는 1959년 『양철북』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힘과 동시에 서독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에도 「고양이와 쥐」(1961), 「개들의 시절」(1963)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61년부터 10년간 정치에 참여한 그라스는 작가로서의 직업과 시민으로서의 정치활동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그는 문학작품을 이용해 작가의 선언이나 저항을 표현하기보다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정신적 우월감을 버리고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본저 책날개 인용 후 2차 가공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작품. 읽으면서 이렇게 기분 나빠지는 소설은 난생 처음이었고, 앞으로 평생을 두고도 이런 작품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002년에 처음 접했을 때, 그 이후 한번 더, 또 이번에 세번째까지 읽는 동안 받은 감상이 모두 동일하다. 감상문을 쓰기 싫었으나, 고서 정리를 위해 하릴없이 랩톱을 열었다. 채무 청산을 위해,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각다귀 같은 빚쟁이와 억지로 대면하는 기분이다.


눅눅한 인간 군상 : 역겹지만, 흥미로워서, 지긋지긋한

"브루노, 순결한 종이 5백 매 사다 줄 수 있겠지?"

그러면 브루노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런 종이겠지 하는 뜻에서 집게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하얀 종이 말이죠, 오스카르 씨?"

나는 순결하다는 말을 고집하면서 문구점에 가서도 그렇게 말해 달라고 브루노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가 오후 늦게 짐꾸러미를 들고 돌아왔을 때, 그는 어떤 생각에 깊이 감동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모든 영감이 솟아나오는 그 천장을 몇 번이나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말하였다.

"당신은 참 좋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문구점에 가서 순결한 종이를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점원이 몹시 얼굴을 붉히면서,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본저 p.9 인용


초반부에 오스카르가 흰 종이를 '순결한 종이'에 빗댄 표현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이 책은 구역질 나면서도 위대한 작품일 것이다. 아니 그러하다(중학생 때 그런 생각을 했다니 나도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어). 이 외에도 『양철북』 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오스카르와 그 주변 인물들은 상식적인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인다.


그의 할아버지 요셉 콜야이체크와 할머니 안나 브론스키는, 도망자와 그를 숨겨주는 시골 처녀로 처음 만난다. 둘의 사랑은 상술한 대로라면 위태롭고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실상은 방화범 요셉이 도주중 안나의 치마 속으로 숨어들어가 성교를 시도한, 그리 아름답지 못한 상황이었다. 오스카르의 어머니 아그네스는 혼전부터 이미 사촌오빠인 얀 브론스키와 은밀한 사이였으며, 그들의 관계는 그녀가 마쩨라트와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여기서 오스카르는 자신이 아그네스와 얀의 근친 관계로 태어난 아이임을 짐작하고, 얀을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인지한다. 마쩨라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아그네스 사후에 재혼한 마리아에게 아들 쿠르트를 잉태시킨 것은 다름 아닌 오스카르―그의 주장에 따르자면―였다.


윤리에 대한 조소, 그리고 금기에 대한 도전

태초부터 어긋난 오스카르의 혈통, 끈적한 탐욕으로 가득한 『양철북』 속 인물들의 행태는, 보통의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라스는 이를 통해 인간의 내밀하고 추잡한 욕망을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그것이 비록 혐오스럽고 역겨울지라도, 독자는 그곳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오히려 그의 문장은 뭇 사람의 관음적 욕구를 채움으로써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오스카르의 입을 빌려 그라스는 말한다. 그대 역시 이들처럼 추악한 인간일진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축축하고 컴컴한 어둠을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쯤 되면 읽는 이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그의 귀신 같은 글솜씨가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양철북』이 유발하는 혐오감은 단순히 인물들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라스는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비윤리적이거나 금기시되는 인물들의 행위를, 주저 없이 문장에 녹여넣는다. 여인의 형태를 한 목상과 교합을 시도하는 사나이(니오베像과 헤르베르트), 은밀한 유혹을 견디다 못해 어린아이―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상 성인에 가까운―와 난잡한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여인들(오스카르, 그리고 마리아와 트루찐스키 부인) 등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곳곳에 가득하다.


그라스는 이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미화하는 대신, 인간이란 스스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말초적 자극에 탐닉할 수 있는 존재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기존의 윤리관 하에서는 고결하게 여겨지는 모성애, 가족, 유년 시절의 첫사랑, 이웃 간의 관심과 애정 등이, 『양철북』에서는 왜곡되고 얼룩진 형태로 발현된다. 그라스는 아기 예수 조각상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오스카르의 천연덕스러움, 성모로 추앙 받는 마리아와 동명이자 오스카르의 첫사랑이지만, 어린이의 모습을 한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마리아 트루찐스키 등 다양한 고의적 장치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더욱 뚜렷이 드러낸다.

독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불륜을 자행하거나, 부적절한 성행위를 은밀히 시도하면서도 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들의 태도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오스카르가 세번째 생일을 맞던 날 자해함으로써 성장을 멈춘 것은, 출생 당시부터 혼돈이 소용돌이치던 자신의 가정과 사회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읽다보니 이게 파본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나는 파본이 잘 걸리는 편인데... 지금까지 열 권도 넘게 당했다(...).

이건 확률이 높다기보다는, 워낙 모집단의 수가 크다보니 겪는 일이라고 혼자 긍정적으로 생각중...


양철북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실컷 때를 밀고 나서 으아아 내가 이렇게 때가 많았단 말이야?! 이거 내 때 아니야!!! 라고 외치면서,

그 노폐물과 내 신체는 별개의 것처럼 취급하지만 실상 그 때의 잔여물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스스로 부정하고 싶어하는 추잡한 일면을 바닥까지 긁어모아서 눈 앞에 누가 억지로 갖다대는 느낌.


어린이의 외형을 하고 순진무구한 척 하고 있지만 성인의 본능과 탐욕을 그대로 품은 오스카르가 혐오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금기어를 끔찍하게 싫어해서 입에 담는 것조차 않는데, 이 작품에선 그런 게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 책을 내 서가에서 쫓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곰팡이가 온몸을 뒤덮는 기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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