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일반]무진기행 by 김승옥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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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김승옥 소설전집 1)

저자
김승옥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4-10-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60년대 문학계를 풍미했던 김승옥 문학의 총결산. 제1권에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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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1941.12.23~ )

 김승옥은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귀국하여 이듬해 순천에 정착했다. 그의 창작 활동은 1952년 월간 <소년세계>에 동시를 투고하여 게재된 것을 계기로 하여, 이후 그는 동시, 콩트 등을 짓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1960년 서울대 불문학과에 입학해 교내신문 기자로 활동하였고,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生命演習)>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서울 1964년 겨울>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65년에 발표된 것이며, 이 소설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1981년 종교적 계시를 받는 체험을 한 후 성경 공부와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을 출간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무진기행>은 김승옥 소설전집의 첫권으로, 수록작품은 <생명연습(生命演習)>, <건(乾)>, <역사(力士)>,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무진기행(霧津紀行)>, <싸게 사들이기>, <차나 한잔>, <서울 1964년 겨울>, <들놀이>,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夜行)>, <그와 나>, <서울의 달빛 0章>,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순이다. 문학동네의 김승옥 전집은 총 다섯 권으로 첫권 <무진기행> 외에 2권 <환상수첩>, 3권 <내가 훔친 여름>, 4권 <강변부인>, 5권 <한밤중의 작은 풍경>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에 고골리의 단편선 <외투>에 대해 적으면서 '유명인사의 추천은 띠지 하나로 충분하다'고 한 적이 있다. 단순한 추천사는 독자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글 대부분은 '이 작품을 읽으니 감동이 정말 크네요.'식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정작 소설에 몰입하거나, 숨겨진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학동네의 무진기행 추천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처럼)지식이 모자라는 젊은 독자들을 위해 시대배경과 연결지어가며 보다 심층적인 작품해설을 덧붙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갗에 부딪히는 불편함, 현실로 다가오는 불쾌감

 김승옥 작가는 글을 잘 쓴다. 그냥 휘황찬란하게 쓰는게 아니라 현실을 꼬집는 불편함이 실감나도록, 마치 누렇게 뜬 장판 위에서 내 발이 있는 쪽을 향해 기어오는 개미를 보는 것처럼 읽는이가 근질근질거리게 소설을 써내려간다. 그의 작품이 60년대, 아니 한국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피부에 와닿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책장을 넘겨보니 드문드문 눈에 띄는 동그라미와 밑줄들. 책에 흔적을 남기는걸 극도로 꺼리는 내 성격상 이건 분명히 강의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리라. 비로소 그 당시 교수님께서 짚어주셨던 내용들이 생각났다. 되짚어 읽어가면서 김승옥의 작품이 왜 불편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못된 수작을 꾸미는 형을 대리하여, 가장한 천진함으로 윤희 누나를 불러내는 '나'의 비열함(<건(乾)> 中), 안개라는 공간에 파묻혀 오롯한 욕망의 주체로 행동하였으나, 이내 진정한 나 자신을 외면하고 무진을 떠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의 무기력함(<무진기행> 中), 연재하던 신문에서 잘린 후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는 '나'의 초라함(<차나 한잔> 中)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작중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알고 싶지 않았던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 내 자신의 심중에 도사리고 있는 저열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작품을 읽는 도중 누구를 겨냥한다고 의식하지도 못하고 '이 자식,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네.'라는 말을 두어번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1964년 그 겨울, 서울을 서성이던 사내들

 김승옥의 작품 중 내가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서울 1964년 겨울> 뿐이다(작품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과는 별개다). 작품의 일부분만이라도 미소를 띄면서 보는 것은 <싸게 사들이기>다. '돈이 슬그머니 손을 집적거려본다. 손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우선 옷깃을 여미고 도사려 보인다. 싫으면 관둬라. 돈이 배짱을 내민다. 손이 주춤거린다. 그러다가 발작적으로 부들부들 떨며 돈을 부둥켜안아버린다. 돈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슬슬 쓰다듬어준다.(<싸게 사들이기> 中)' 통속소설에서 수작을 주고받는 남녀를 그려낼 법한 묘사가 돈과 K의 손으로 옮겨가니 신선하면서도 실감나게 와닿는 표현이 된다.

 <서울 1964년 겨울>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 당시 이걸 창작한 김승옥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나'도, 안(安)도, 이 작품을 쓸 당시의 김승옥도 스물다섯이다. 스물다섯. 스물다섯이다! 20대 중반에 이런 소설을 저작했다는 사실이 새삼 소름돋는다. 이십여년을 살아온 젊은이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문장 마디마디마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본 중년의 호흡이 느껴진다. 달필은 타고나는걸까? 단지 하늘에서 내린 재주 덕을 본 것일까, 시대의 그늘 속에서 억눌린 에너지가 돌출된 것일까. 식어빠진 커피처럼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하는가 싶다가도 돌연 안광을 번득이며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의 천재성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 역시 나 자신의 이기적인 습성을 일깨우긴 하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소하고 하찮은 대화가 生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느낌이다. 내가 가장 즐거이 읽는 부분은 '나'와 안(安)이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만의 비밀을 나누는 대목이다. 평화시장의 가로등, 화신백화점의 창문, 서대문 버스정거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잔뜩 흥분해 어린 아이들처럼 떠드는 둘의 모습이, 그 순간만에는 세파에 시달리는 젊은이임을 잊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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