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일반]비둘기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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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4-07-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린시절의 치명적인 상실로 인해 극도의 자폐증과 소심증에 갇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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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공포는 내면에서 발현한다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는 '걱정의 96%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다'라는 요지의 내용이 있다. 말인즉슨, 우리가 안고 있는 걱정거리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거나, 이미 지나갔거나,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 말을 그대로 <비둘기>에 대입해본다면 '공포의 96%는 실존하지 않는 위험에 대한 공포다'라고 쓸 수도 있겠다. 마주한 상황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묘한 감정의 일렁거림이 공포의 불길을 부추기는 것이다.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는 한 남자의 심리 변화를 깊이 파고들어 이러한 인간 내면의 공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비둘기>는 복도로 날아들어온 한 마리 비둘기 때문에 극한의 공포심에 시달리는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의 내면 세계를 다루는 소설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차례차례 떠나보내고 아내의 외도와 같은 불상사를 겪으면서, 조나단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무감각으로 가득찬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플랑슈 가의 어느 주택 7층에 있는 '코딱지만한 방'이었다. 7.5평방미터의 작은 공간, 공동변소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다는 특성 덕에 그 방은 조나단에게 도피처이자 안전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그가 비둘기를 발견하기 전인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까지는 말이다.

 

 그의 작은 평화를 깨뜨린 것은 어느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한 마리의 비둘기였다.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에 공중 변소에 가려고 방문을 열었던 조나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납회색 깃털을 한, 웅크리고 앉은 비둘기였다. 그 놈을 발견한 순간 조나단은 정말 '죽을 만큼 놀랐다'. 이윽고 새의 몸이 약간 꿈틀대다가 눈을 감는 순간, 조나단은 그것이 눈꺼풀이라기보다는 눈을 삼켜버린 입술 같은 것이라 인식했고, 이 때문에 공포심은 극대화되었다. 그의 잔잔했던 일상은 비둘기라는 작은 파문으로 인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찻잔 속의 태풍 : 강박 속에 갇힌 인간의 내면

 비둘기 한 마리가 조나단을 어찌할 수 있으랴. 그 작은 새가 발톱을 세우고 부리로 쪼아댄다고 해도 조나단에게 생채기를 입히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고, 그조차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나단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 외에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중변소로 가기 위해 문 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방 세면대에서 오줌을 누며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몸서리친다. 어긋나버린 아침으로 인해 그의 평온했던 일상은 엉망진창이 된다. 겨우겨우 출근한 은행에서도 그는 지점장 뢰델 씨의 승용차가 경적을 수 차례 울리는 동안 듣지 못하고 넋빠진 채 있고, 점심을 먹다가 옷자락을 찢어먹는 등 실수를 연발한다. 조나단은 그날 밤 낯선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호텔과 대비되는 익숙함, 낮은 라디오 소리와 찻잔 부딪치는 소리, 포근한 커피향기, 이 모든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조나단은 7층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그를 맞이하는건 닫혀있는 창문과 깨끗하게 청소된 복도. 비둘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예전에 쥐스킨트에 대해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소함을 극대화'시키고, 작품 상당수가 '극도의 집착, 치우치고 비뚤어진 감정에서 출발한다'고 적은 일이 있다. 사실 조나단의 생각과 행동은 실소를 자아낼 수도 있는 유난스러운 면이 있다. 허나 그가 그토록 공포에 떨었던 이유는, 너무나 견고했기에 절대 무너질 리 없다고 믿었던 자신만의 아성, 최후의 보루마저 위협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조나단처럼 사소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말도 안되는 망상으로 불어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쥐스킨트는 무심코 넘길 법한 생각의 사슬들을 촘촘히 엮어 인간의 내면을 심도있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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