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알퐁스 도데 단편선 by 알퐁스 도데

2016.10.26 06:30

알퐁스 도데 단편선.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당시 내가 읽었던 것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번역본인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였다―똑같은 걸 구할 수 없어서 그나마 비슷한 것을 골라서 샀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모두 담았다고 보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있지만 아쉬운 대로 읽을만하다.


알퐁스 도데(1840~1897)

알퐁스 도데는 남프랑스 님이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고등중학교 시절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고 사환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857년 파리로 건너간 뒤, 시집 <연인들>(1858)이 인정 받으면서 문학에 더욱 정진했고, 미스트랄, 플로베르, 졸라 등과 교우했다. 그들처럼 도데 역시 자연주의 일파에 속했다.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고향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애착을 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연민으로써 보듬는 방향으로 발현되었다. 이는 특유의 인상주의 작품을 창작하는 데 기여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1866), <쾌활한 따르따랭>(1872), <월요일 이야기>(1873) 등이 있다. 희곡 작품으로는 <아를의 여인>(1872)이 있는데, 비제가 이를 관현악곡으로 작곡하기도 했다.


이 단편집은 도데의 작품집 <풍찻간 편지>와 <월요일 이야기>에서 대표적인 작품들만 추려서 실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뀌뀌냥의 신부」와 「스갱 씨의 염소」가 빠져 있어서 매우 아쉽다. 여기 수록된 것 중에서만 좋아하는 작품 목록을 꼽자면 「아를의 여인」, 「고셰 신부의 불로장생주」, 「당구」가 있다.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별」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리 즐겨 읽지 않는다.


따뜻한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그리는 서늘함

알퐁스 도데 하면 대부분 「별」, 「마지막 수업」 등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상기한 작품들 속에서 그는 「별」 속 젊은 목동처럼 부드럽고 담백한 문체를 구사한다. 그렇지만 날 사로잡았던 도데의 소설은 그런 훈훈함이 넘쳐흐르는 작품들이 아니었다.

위 사진 속 작품은 「코르니유 영감님의 비밀」이다. 방앗간 주인 코르니유 영감은 제분소가 들어온 이후로 일거리가 떨어져 생활고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토 자루를 밀가루인양 싣고 다니며 자신의 건재함을 뽐낸다. 이웃에 의해 그 실상이 밝혀지고 방앗간은 다시금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 듯 하나, 이후 코르니유 영감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을에 있던 마지막 방앗간마저 문을 닫게 된다.

그의 작품은 전형적인 서사 구조(발단-전개-갈등-절정-결말) 속에서 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결말―'그래서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을 취하지 않는다. 무정한 현실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비극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프로방스의 따뜻한 햇살, 푸르른 언덕이 주는 포근함을 기대했던 독자에게,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듯하다.


이와는 별개로 그의 문체에는 가련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묻어난다('가련한 이들'이라고 하니 갑자기 레미제라블이 생각났..ㅇ<-<). 「코르니유 영감님의 비밀」에서 과거의 풍요로움을 묘사하는 대목은 마치 이야기꾼이 빛바랜 태피스트리에 얽힌 전설을 풀어놓는 듯하다. 지나간 영광은 현재 쇠락한 마을의 모습과 대비되어 쓸쓸함을 더욱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모파상이 여러 차례 떠올랐다. 찾아보니 도데와 모파상은 활동 연대도 엇비슷하고, 둘 다 자연주의 작가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데가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하여 서민적이고 목가적인 작품을 썼다면, 모파상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자연주의 작품을 주로 집필했다고 볼 수 있다(「목걸이」, 「비계덩어리」 등). 특히나 도데의 작품 「당구」를 읽을 때는,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해 짓밟히는 개인의 운명이라는 공통 분모 때문에 모파상의 <비계덩어리(Boule de Suif)>가 생각났다(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읽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별개인 모양이다).


가슴을 찢어발겨놓을만한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것도 도데의 특징이다. 당면한 고통이 대수롭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월이 오래 지난 뒤 슬픔으로 뒤범벅된 아픔이 화석처럼 굳어질 정도가 되어야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 걸 듣는 기분이어서 그렇다. 눈물이 말라붙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듣게 되는 얘기가 비극성을 더 극대화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이래서 난 그의 작품이 싫지만, 그래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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