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추리]결백 by G. K. 체스터튼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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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K. 체스터튼(1874~1936)

G. K. 체스터튼(이하 '체스터튼')은 영국 런던 출생으로, 미술을 전공한 언론인, 소설가 겸 수필가이다. 그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브라운 신부'는 그의 친구인 존 오코너 신부를 실제 모델로 한 것이다. 체스터튼은 친구의 인격과 지성만을 빌려온 뒤, 그 위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서퍽 촌뜨기'의 이미지를 덧입혀 브라운 신부를 완성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제1권 『결백』에는 총 열두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푸른 십자가>, <비밀의 정원>, <이상한 발걸음 소리>, <날아다니는 별들>, <보이지 않는 남자>, <잘못된 모양>, <이즈리얼 가우의 명예>, <사라딘 공작의 죄악>, <신의 철퇴>, <아폴로의 눈>, <부러진 검의 의미>, <세 개의 흉기> 순이다. 모든 작품은 4,50페이지 내외의 단편으로, 트릭 역시 많이 꼬여있지 않고 명쾌하게 풀리는 편이다. 수법의 복잡성이 낮다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약간씩은 비틀려있는 트릭의 참신성 덕분에 각각의 작품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색채의 마술사 체스터튼


보랏빛 구름과 황금 같은 태양, 선홍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동시에 타오르는 듯 선명하고 투명하며 아득하게 보였다.

- <잘못된 모양> 中


숲속의 수천 개의 나무들은 잿빛을 띠고, 그 수천 개의 나무들이 지닌 수백만 개의 가지들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초록빛과 짙은 파란빛이 섞여 있는 청회색 하늘에는 별들이 깨어진 얼음 조각처럼 쓸쓸하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 <부러진 검의 의미> 中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시각적인 묘사였다. 화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읽어도 체스터튼의 표현은 이미지를, 그 중에서도 색채 부분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책 자체에 삽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서술 덕분에 마치 눈 앞에서 그림이 펼쳐지듯 장면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작달막한 신부는 전형적인 동부 촌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둥글넓적하니 둔해 보였으며, 눈은 북해(北海)만큼이나 공허했다. 신부는 꽤나 버거워 보이는 갈색 꾸러미 몇 개를 들고 있었다. 성체 학술 대회는 항상 이렇게, 땅 속에서 나와 갑자기 세상의 밝은 빛을 본 두더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무력한 부류의 인물들을 불러모으곤 했다.

- <푸른 십자가> 中


적당히 길고 갸름한 볼과 턱에 어울리는 낮고 약간 굽은 로마풍의 코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코밑 수염과 뾰족한 황제 수염으로 대부분 가려져 있었다. 코밑 수염은 턱수염보다 훨씬 더 진해서 약간 극적인 효과를 내고 있었으며, 옷차림도 화려하여 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었다. 그는 흰색 실크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외투에는 난초꽃을 꽂고 있었다.

- <사라딘 공작의 죄악> 中


체스터튼의 시각적인 묘사는 비단 배경에만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흐름을 암시하는 데에도 영리하게 사용된다. 인물에 대한 표현이 다소 전형적이어서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당시가 추리소설의 가지가 한창  뻗어나가던 시기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클리셰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인간적인 신부의 눈빛 속 날카로운 통찰력

체스터튼―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창조해낸 '브라운 신부'―의 명성은 여러 차례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구입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주인공인 브라운 신부에 대해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가톨릭 신자이다보니 사제와 관련된 이미지가 과연 탐정과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 브라운 신부의 외형이 마치 미욱한 촌부와 같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작은 키, 통통한 몸에 낡은 검정색 우산. 브라운 신부의 외모만 보았을 때, 그는 그저 순박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성직자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그와 대척점에 서있는 플랑보는 큰 키에 날렵한 행동거지 등이 어우러져 가히 초인적인 솜씨를 뽐내는 거물급 범죄자라고 할 수 있다. 플랑보는 타고난 육체적 힘 뿐만아니라 능숙한 변장술과 치밀하게 세운 계획 등으로 대담한 사건을 저질러 장안을 발칵 뒤집어놓곤 한다.

두 사람이 일대일로 승부를 벌였을 때의 결론은 당연히 플랑보의 승리로 귀결될 것 같지만, 이 때 브라운 신부의 숨은 매력이 빛을 발한다. 허술하고 어리숙한 신부가 의외의 담력을 발휘하여 음흉하고 빈틈 없는 범죄자를 제압하는 전개 방식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외형은 마플 양처럼 눈에 띄는 점 없이 평범한데 통찰력은 홈즈처럼 날카로운,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오귀스트 뒤팽을 연상케하는 브라운 신부의 활약이 내 구미를 당겼다. 내 입맛에 맞는 추리소설을 찾아서 한동안 헤맸는데, 당분간은 체스터튼의 작품에 정착할 생각이다.


유독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비밀의 정원>과 <사라딘 공작의 죄악>. 단편이다보니 트릭을 세세하게 언급하는 것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따로 적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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