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잡지]릿터 02호 : 페미니즘(2016년 10/11월) (Feat.BOSIM님)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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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작성에 대한 小考

BOSIM님께 받은 문학잡지 릿터를 읽으려고 카페(A.K.A 김약국)에 왔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트인 공간에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이 주신 양말은, BOSIM님께서 너그러이 양해해주셔서 사이즈가 맞는 발에게 전달했다. 감사합니다! :D



평소 감상문을 적을 때는 메모 어플에 문구와 어휘를 쏟아놓았다가 나중에 글을 쓰면서 정리하는 편인데, 노트가 생기니 왠지 여기에 생각을 옮기고 싶었다. 잡지와 함께 들어있던 노트를 펼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었다. 이번 글은 책 자체보다는 커버스토리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중이 더 크다.


페미니즘 Feminism 그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하여

BOSIM님의 이벤트에 응모하면서 이 책을 신청했던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즘에 큰 지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이 담론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생각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격쟁을 벌이지는 않더라도, '페미니즘'이라는 게 문학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알고 싶었다. 나에게는 편치 않게 느껴지는 그 담론과 마주하고, 내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릿터,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

릿터 2호에서는 '페미니즘'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문학 잡지답게 플래시 픽션, 이슈, 비평 등의 형태로 페미니즘 문학을 소개한다. flash fiction이 뭔가 했더니 초단편 소설을 일컫는 용어였다. 역시나 전적으로 내 입맛에 맞는 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부분은 동의가능한 범위였지만,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의견도 있었다. 그건 아마 집필진과 나의 살아온 궤적이 다르고, 그 때문에 다른 가치관에 입각해 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과는 구별되는 '페미니즘 문학'의 한계점

문학에서 내가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을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재미'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중히 여기는 것을 묻더라도 나는 또 '재미'라고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소리를 높여서 '재미'라고 대답할 것이다. 문학이건, 잡지건, 다른 어떤 갈래의 책을 읽건 나는 '재미'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추구한다. 그 '재미'라는 것은 단순한 유희일 수도 있고, 진리를 깨닫는 순간의 희열일 수도 있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목도할 때의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페미니즘 문학'은 내 구미를 크게 당기지 않는다. 작품이 주변은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페미니즘'이라는 최종적 지향점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품의 개연성이나 구성의 치밀함이 다소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대주제인 페미니즘을 떠받치기에는 다소 위태로워 보인다. 차원이 다른 논의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계급간 투쟁을 다루고,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한다는 점 때문에 1920,30년대의 KAPF와 프로 문학이 떠오르기도 했다. 페미니즘 문학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는 프로 문학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릿터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글은 다음의 세 편이다.

<서파>(정지향), <부케이 비단벌레>(최정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 김명순 평전>(김혜진)


<서파>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몰래 침입해 방 안과 서랍 속 물건까지 촬영해 사진을 모으다가 검거된 남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일곱 명의 집에 침입했던 흔적을 일곱 개의 폴더로 남겼다. 대학생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당시 기숙사의 다른 남학생이 여학생이 있는 방에만 여러 차례 침입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방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잠긴 문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날 때면 두려움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나중에 한참이 지나서야 범인이 잡혔지만, 그렇다고 그 불안함이 딱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었다.


<부케이 비단벌레>는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은근하게 드러낸다. 사실 이게 과연 어떤 의미에서 페미니즘 문학일까 싶기도 하다. 딱히 도드라지는 사상적 기반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 갈등의 촉발―그리고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은 해소―과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초단편이라는 한정적 분량에도 불구하고 꽤 짜임새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 김명순 평전>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한국의 여성 작가는 시, 소설, 수필 등을 막론하고 그 층이 상대적으로 얇은 편이다. 우선 남성 작가에 비해 모집단 자체가 적기도 한데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반민족행위를 했던 친일파가 자동적으로 배제되고, 월북한 인물에 대한 연구도 현 교육 체제에서는 활발하지 않다. 그런 측면을 다 고려한다면 남는 작가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명순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그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졌다.


"이야기보다는 문장이 좋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언어 감각이 남다르다'고 평하면 기분이 좋아요.

 메시지나 사회적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쓰면서 저부터가 즐거울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p.52 한은형 작가의 인터뷰 본문에서 인용


한은형 작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문학을 애호하고 '세련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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