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예술]샤갈 Chagall(창해ABC북 002)

2018.04.16 06:30

샤갈Marc Chagall(1887-1985)

러시아 출신인 샤갈은 1910년 23세의 나이에 파리에 자리잡는다. 러시아계 프랑스인이기도 했으며 유대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던 샤갈은, 스스로의 출신성분답게 한쪽에 매몰되지 않고 야수파, 큐비즘, 오르피즘 등 여러 유파를 고루 거쳐가며 독자적 영역을 쌓는다.

혁명이 발발한 뒤 소비예트 체제에 실망한 그는 파리와 미국에서 자유를 되찾는다. 웅장한 작품을 그려보고 싶었던 그는 방스에 정착하면서 극장의 내부 장식이 되는 모자이크와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작품을 구상해 프랑스에 위대한 연작을 여럿 남겼다.


샤갈의 미학 : '또다른 세계를 향해 날아가게 될 창'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샤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국의 작곡가 조지 거슈윈(1898-1937)이 떠오른다. 활동이 겹치는 기간도 있고 샤갈의 그림 중 뮤지션이 등장하는 것들은 유난히 거슈윈 특유의 멋스러우면서도 흥겨운 느낌―<Rhapsody in Blue>나 <An American in Paris>를 들어보자. 클릭하면 관련 영상 클립이 열린다―이 잘 살아있는 것 같아서.


나의 예술은 내 화포(畵布) 위에서 분출하는 비정상의 예술, 타오르는 듯한 수성(水星), 푸르른 영혼인 것 같아, 라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자연주의도, 인상주의도, 사실적 입체주의도 다 사라져라!"


샤갈, <나의 삶> 中 인용


자유분방한 재즈처럼 샤갈의 화풍 역시 특정한 유파에 소속되기를 거부했다. 물론 샤갈의 작품에서 다양한 갈래의 유파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한때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의 자율적 연상작용을 이용하는 야수파의 특징을 보였고, 소재를 기하학화하는 큐비즘적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허나 그는 색채를 단순히 해방시키는 도구로 야수파 기법을 이용했으며, 물체를 분할하되 그 윤곽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큐비즘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샤갈이 러시아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제일 먼저 떠올랐던 인물은 고골리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작가 고골리! 우연이긴 하겠지만 샤갈이 고골리의 작품에 삽화를 그려넣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볼라르라는 화상은 샤갈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그에게 처음으로 고골리의 <죽은 영혼>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그는 고골리의 유머와 사실주의를 좋아했고, 고골리가 고발하는 러시아 민족의 결점과 악덕에 대해 주목하기도 했다. 그래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과감하게 희화화하거나 자신의 어린 시절 속 추억을 되살려 삽화를 그려내기도 했다.


샤갈의 세계 : 세속적 경이로 가득한 성스러움

샤갈의 작품들은 유대인의 혈통과 하시디즘―Hasidism 혹은 Hasidic Judaism, 랍비 바알 셈 토프가 유대교 신비철학인 카발에서 영감을 얻어 창시한 신비론 운동으로 괴로운 사람을 위안해주는 일종의 민중 종교―의 영향을 받아 성서 속 이야기를 다룬 것이 많다. 화가로 데뷔했을 때부터 그는 아담과 이브, 아벨과 카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등 종교적 장면을 다수 그려왔다. 미국에 망명한 뒤로도 그는 자신의 시적 신비주의를 도구 삼아 신화와 성서를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속적인 소재, 가령 연인, 춤추는 이들, 결혼하는 신랑신부 등을 그려낸 작품 속에서도 샤갈 특유의 신실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을 단순한 육욕으로 치환하지 않고, 일종의 성스러운 체험, 절대자가 내려주는 축복으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는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연인 벨라, 그리고 바바에 대한 사랑이 영혼에 대한 충족감으로 연결되는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며, 에로틱한 사랑조차도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았다.

맨 위 사진이자 책의 표지인 <포도주 잔을 든 두 사람의 초상 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 1917-1918이나, <도시 위에서 Au-dessus de la Ville>, 1914-1918 같은 작품 속에서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신혼부부의 모습은 그의 몽환적인 기법과 어우러져 사랑이 주는 환희를 한층 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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