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by 조세희
by 첼시조세희(1942~)
조세희 작가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출생, 서라벌예대와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소설 『돛대 없는 장선(葬船)』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했으나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칼날」을 발표하면서 새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장이』'로 약칭)은 고통 받는 소외계층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로, 「뫼비우스의 띠」부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등 총 열두 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작가는 그 뒤 『시간여행』, 『침묵의 뿌리』 등을 출간했다.
-본저 책날개 및 두산 백과 참고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칠십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슬픈 마음으로 쓰고 있다. ...(중략)... 탄압은 정치와 경제 양면으로 가해졌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 본저 작가의 말 中 인용
『난장이』 연작은 상술했듯이 총 열두 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차례는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순이다. 각 작품은 독립적인 단편인 동시에 연작소설로써 하나의 장편소설을 구성한다. 단편마다 시점을 달리하며 서술되어있는데, 이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성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는 수단이 되는 한편, 작품의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거듭해 상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누가 난장이를 죽였는가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 것 같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본디 난쟁이가 옳지만 작품의 표기를 존중해 극중 인물을 지칭할 때도 난장이 그대로 적는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도시 재개발과 철거 이주민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일종의 복음처럼 회자되는 작품이다. 워낙 세간의 손을 많이 타서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닳고 닳아버린 모서리를 보며 지레 진저리칠지 모른다. 하지만 '고전'의 또다른 개념이 '누구나 들어보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작품'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생각해볼 때, 한번쯤은 이 『난장이』를 되짚어 읽어가면서 블로그에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읽을 때마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난장이』가 주는 불편함은 단순한 혐오감이나 거부감과는 전혀 별개의 감정이다. 죄책감이라고 말하면 맞을까. 아니 이건 '미안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보다 적절할 것 같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될 당시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대와 구조는 여전하다. 그동안 되풀이된 학습에 의해 순응과 무저항이 가장 안전한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터득한 사람들. 시류에 편승해 안주하는 달콤함에 취한 이들 가운데 나도 자리잡고 있다. 부조리에 눈감는 비겁함, 불의에 침묵하는 저열함, 암묵적 동의로 그치는 부족함, 『난장이』의 활자들은 나의 변변찮음을 조용히 꾸짖는듯 종이 위를 수놓는다.
낙원이 아닌 낙원구, 행복이 없는 행복동
난장이 가족이 사는 곳은 낙원구 행복동. 하지만 그곳에는 낙원도 행복도 없다. 전에 잠깐 거주하던 곳 이름이 행복동이어서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난장이 가족에게 그랬듯 내게도 다가올 운명(...)을 느꼈던 적이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당시로부터의 몇 년의 기억은 거의 증발해서 없어지다시피 했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은 난장이 가족에게 기본적인 행복조차 요원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건조한 문체의 철거 계고장은 현실의 냉혹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너 매 좀 맞아야겠구나.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나도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싶어."
"빨리 가자."
"엄마는 왜 우리들 옷에 주머니를 안 달아주지? 돈도 넣어주지 못하고, 먹을 것도 넣어줄 게 없어서 그렇지?"
"아버지에 대해 말을 막 하면 너 매맞을 줄 알아라."
"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
...(중략)...
영희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영희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영희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영희를 때려주고 나는 후회했다. 귀여운 영희의 얼굴은 눈물로 젖었다. 우리는 그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 본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인용
짧게 끊어지는 단문들은 일종의 운율을 이루어 작품의 미학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기법은 『난장이』가 일견 산문시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역설적인 지명을 필두로 해서 작품 곳곳에 스며있는 비유와 상징은 난장이 가족의 비극성을 동화처럼 그려낸다. 이는 무심한 듯 툭툭 이어지는 문장과 함께 그들이 처한 상황의 참담함을 도리어 강조한다.
조세희 작가는 『난장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당면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그것은 항상 주변에 도사리고 있지만 굳이 꺼내어보고 싶지는 않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외면하고 싶은 그런 문제이다. 오래 묵은 장판을 뒤집어 깠을 때 올라오는 곰팡이 냄새와 시꺼멓게 변해버린 마룻바닥처럼, 『난장이』는 우리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저 너머의 불편함을 건드린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난장이』가 다루는 주제 역시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문제에 대해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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