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감자 by 김동인(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권)
by 첼시
이 책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된 <감자>. 김동인의 소설 열두 편을 엮어낸 단편선이자 한국문학전집 제1권이다. 지난번 <만세전>을 읽고 작품 구성과 해설, 글자체, 종이의 질감, 제철 방식 등이 두루두루 마음에 들어 1권을 구입했다. 그 말인즉슨 전권을 모두 장만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첫 발을 내딛었다는 소리다.
여기 수록된 작품은 순서대로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태형>, <눈을 겨우 뜰 때>, <감자>, <광염 소나타>,
<배회>,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광화사>, <김연실전>, <곰네>의 구성이다.
김동인은 190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본디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유산까지 물려받았으나 다소 방탕한 생활로 재정적 파탄을 맞이했고 말년에는 빈곤에 시달리며 정신 착란, 건강 이상 등의 증세를 보이다가 1951년 자택에서 영면했다.
김동인의 비평가적 면모는 그리 널리 알려져있지 않으나, 오히려 "소설가보다 비평가로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1919년 2월 주요한, 전영택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의 발간을 주도했다. 여기서 그는 문학을 교화와 계몽의 수단으로 여겨온 이전의 관념을 비판하고 그 예술적 자율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 근대 문학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김환의 소설을 두고 염상섭과 벌인 논쟁을 통해 "비평가의 역할은 영화의 변사처럼 작품을 독자에게 해설해주는데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비평활동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춘원연구>로 그의 평생 경쟁자이며 극복 대상이었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작품 구조와 작가 생애에 초점을 두고 비판한 글이다.
또한 그는 글쓰기가 근대화되어가던 20세기 초의 상황에서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언문일치를 지향하는 구어체로 새로운 말글살이의 규범을 세우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대부분 일본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기에 한국어의 독자성을 훼손하고 언문일치의 방향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동인의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극적 운명 내지는 숙명'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극단적인 상황 혹은 비극적 운명에 처해있으며 그 운명과 환경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소설은 인물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연대기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는데 마치 전(傳)과 같은 짜임새다. (이는 그의 단편집에 수록된 <김연실전>의 제목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그의 소설은 사건 서술 위주의 평면적 구성으로 일종의 설화성을 띤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평면적인 것을 넘어서 허술하기까지 한 전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교과서에 많이 소개되는 <붉은 산> 역시 그렇다. <붉은 산>에서 날건달에 파렴치한 불한당으로 묘사되던 삵(익호)이, 어느 날 같은 민족인 송 첨지가 중국인 지주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처량한 죽음을 맞이하자, 별안간 정의의 사도가 되어 지주놈에게 원한을 갚으려다 죽어가는 내용은 개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구성이다. 삵이 어째서 마음을 갑자기 고쳐먹었는지, 왜 죽어가면서 (흰 옷과 붉은 산으로 대변되는) 그의 조국을 그리워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당최 나와있지 않고, 눈을 감는 그 순간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것도 영 석연찮다. 김환의 소설을 두고 날선 논쟁을 벌였던 염상섭과 굳이 견주어보자면 김동인이 교지를 쓰는 학생이라면 염상섭은 메이저 언론사의 편집국장 정도 되는 수준 차이가 느껴진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제재를 좀더 파고들어가면 그는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많이 다루었다. 가정교사로 있다가 집주인인 남작과 정을 통하고 아기를 가진 채로 쫓겨나는 여학생 엘리자베트를 다룬 <약한 자의 슬픔>, 기생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상념에 빠지는 금패에 대해 쓴 <눈을 겨우 뜰 때>, 그 얼굴 빤빤한 복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 하게 되는 <감자>, 질투가 심한 지아비의 등쌀을 견디다 못해 강물에 몸을 던지는 아내가 등장하는 <배따라기>등...
그나마 그 중에서 희망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것은 <곰네> 뿐이다.
그의 소설 속 여성이 일률적으로 불행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김동인의 여성관 자체가 폄하적인 시각을 갖고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근대화 과정에서 가부장 제도가 흔들리면서 불거진 여성인권 문제를 다루어 그 모순점을 비판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섣부른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구성의 빈약함과 제재의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흡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평양 출신인 그답게 작품 속 곳곳에는 감칠맛나는 이북 사투리가 등장한다. 이 사투리의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작중 여인들의 입을 빌려 일종의 리듬감까지 느껴지는 대사로 탈바꿈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조근조근 소리내어 읽고 빙긋 웃게 되었다(심지어 비극적인 장면의 대사마저도!). 또한 여인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단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순간순간의 감정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맞물려 다소 허술해보이는 소설에 잔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배따라기> 中
"아이구 눈시다- 나두 한잔 주소고레. 당신네만 잡숫갔소?"
<눈을 겨우 뜰 때> 中
"넌 옛날 같으문 시집가게 된 년이 밤낮 어델 떠돌아다니니.
이런 날은 좀 집에 붙어서 일이나 하디. 대체 어데 갔댔니"
<김연실전> 中
앞서 읽은 <만세전>에 대한 기록은 → 2014/06/28 - [책] - [소설]만세전 by 염상섭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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