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일반]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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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펴냄 | 2000-08-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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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중학교 때 <좀머 씨 이야기>라는 소설을 처음 읽고,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중학교를 졸업하고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소설가 중 첫번째는 쥐스킨트가 자리잡고 있다.

다작하지 않는 그여서 아쉽지만, 그의 타오르는 창작욕이 쉬이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천천히 열기를 유지하길 바란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하 '향수')는 좀머씨 이야기 이후로 두번째로 선택한 그의 작품이다.

향수라는 제목이 (그 당시)사춘기 소녀의 낭만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요인도 있고, 좀머 씨 이야기처럼 담담한 쓸쓸함이 녹아들어간 동화같은 묘사를 기대한 것도 있었다. 기억나는 것만 다섯번은 읽었다.

 

좀머 씨 이야기가 색연필로 그린 일러스트 같다면, 향수는 아르누보 양식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묘사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뭐라고 해야되나... 거미? 구더기? 이런 혐오스러운 요소들을 다른 세상에서 창조한 생명체 마냥 새로이 아름답게 그려낸 듯한 느낌이 든다.

절세가인이 미소를 짓고 있어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똥자루나 진배없다는 현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본뜬 듯,

독자가 품고 있는 일말의 기대감이나 동경을 한꺼풀 벗겨내어 속물적이고 더러운 본질을 드러내는 작가의 전개 방식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이 어딘가 가련한 속성을 지닌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줄거리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냄새의 천재, 향을 조합하는 대가, 그러나 그 자신은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못하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주인공이

고아원과 무두장이의 도제, 향수 장인의 도제를 차례차례 거치면서 마침내 향수의 천국, 그라스로 흘러들어와,

그가 추구하는 궁극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소녀(여자로 피어나기 직전의)를 차례차례 살해한다는 내용.

텍스트로 요약한 내용은 끔찍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지만, 소설의 흡인력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뽐낸다.

 

 

 

제목이자 소재가 향수인만큼, 모든 인물에 대한 묘사는 '냄새'가 주를 차지한다.

시큼한 냄새를 지닌 테리에 신부, 젖냄새와 치즈향의 양털 냄새를 품고 있는 그르누이의 유모 잔느 뷔시 등

소설 속에서 냄새라는 요소는 인물의 성격을 이목구비보다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중 그르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모 잔느 뷔시가 그에게서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면 응당 풍겨야하는 냄새에 대해 묘사하는 대목.
번역도 상당히 매끄러운 편이어서(강명순) 나도 모르게 냄새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코를 벌름거리고, 아기의 향기를

상상하며 엄마미소를 띄게 된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내용을 조금 옮겨보자면

「예를 들면 발에서는 매끄럽고 따뜻한 돌의 냄새가 나요. 아니, 오히려 농축 우유나 버터 같은 냄새에요. 맞아요. 바로 신선한 버터 냄새가 나요. 그리고 아기들 몸에서는 마치…… 마치 우유에 적신 과자같은 냄새가 나요. 그리고 머리 꼭대기에서는요, 가마가 있는 머리 뒷부분 말이에요. …중략 여기가 가장 좋은 냄새가 있는 곳이에요. 여기서는 캐러멜 냄새가 나지요. 아주 달콤하면서도 놀라운 냄새라고요. 신부님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여기서 나는 냄새를 맡게 되면 누구나 아기를 사랑하게 된다고요.

매끄럽고 따뜻한 돌의 냄새라니! 쥐스킨트처럼 고도의 편집증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 속의 모든 냄새에 대한 묘사를 다 이끌어내기 어려웠으리라. 나도 모르게 매끄럽고 따뜻한 돌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을 상상하며 아기의 냄새와 관련지어보게 된다.

 

 

 

소설 속 테리에 신부의 입을 빌려 작가는 질병에 걸린 아이들은 그 증상에 따라 각각 다른 냄새를 풍긴다고 설명한다.

이 뿐만 아니라, 쥐스킨트는 마치 냄새로 이목구비를 그리듯이 인물의 성격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초적이면서도 권위적이고 거친 무두장이 그리말은 냄새만 들이쉬어도 그의 잔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고,

정액 냄새를 물씬 풍기며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드뤼오는 그의 고용주인 아르뉠피 부인과 잠자리를 함께한다.

하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특성은 주인공 그르누이만이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기에, 그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겉보기에 별 특징도 없고, 외적으로는 허약해보이는 그가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냄새가

타인으로 하여금 사랑과, 경외심과, 두려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냄새를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또다른 재미는 18세기 프랑스의 시대상과 향수 제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특히 미지의 세계였던 향수의 제조를 그 밑바닥부터 파헤쳐서 향기의 원천을 얻는 방법부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꽃으로부터 어떻게 향기를 거둬들이는지, 향기를 겹치고 겹쳐서 농축된 유지를 어떤 방법으로 가공해 향수를

제조하는지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도 어느새 향기의 연금술사가 된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을 짓기 위해 쥐스킨트는 수시로 그라스(소설 속 배경이 되는 향수의 도시)로 답사를 떠났다고 한다.

그의 소설은 반복해서 읽어도 치밀한 구성과 우아한 묘사 덕에 흐드러진 장미 정원처럼 독자를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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