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현산어보를 찾아서② :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 by 이태원
by 첼시
오랜만에 이어가는 <현산어보를 찾아서>(이하 '현산어보'). 1권은 손암(巽庵) 정약전의 생애와 그의 저서 자산어보가 어떤 책인지를 소개하고, 흑산도의 생태계 환경을 개괄적으로 기술하는 내용이 주가 되었다. 2권에서는 분위기를 전환하여,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학자 정약전의 학문적 토양에 대해 보다 깊게 파헤치는 한편, 손암 선생이 탐구했던 해양생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기론(理氣論)을 넘어서 성기호설(性嗜好說)로
2권은 당시 사회의 주류를 넘어서 교조적 성격까지 지니고 있던 사상 성리학에 대한 반론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조선 후기를 지배했던 주희의 성리학. 주자는 모든 현상을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 리(理)과, 그것이 구체적인 기질로 발현되는 기(氣)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이 이기론(理氣論)이라는 원리가 우주의 모든 만물을 아우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에서 오는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는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기준 뿐만 아니라, 나아가 지배층과 피지배층, 더 크게는 중국과 오랑캐의 우열을 나누는 굴레가 되었다.
정약용은 인간의 도덕적 한계를 부인하고, 악한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타고나는 기질에 의해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결정된다는 성리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성기호설(性嗜好說)이라 정리했고, 형인 약전과도 이에 대한 의견을 서신으로 주고받았다. 정약전 역시 사람을 연구하는 것(사회과학)과 자연을 탐구하는 것(자연과학)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을 견지함으로써 실용학문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수산시장에 온 것처럼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묘사
2권에 등장하는 해양 생물들은 1권에 비해 좀더 친숙한 것들이 많았다. 멸치, 까나리, 넙치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고기부터 시작해서 전복, 해삼, 해파리, 아귀까지 각종 수산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니, 마치 수산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생물들에 대해 기술하면서, 단순히 생김새 뿐만 아니라 그 생물의 습성, 맛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내가 기억하는 물고기의 생김새와 견주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조상들의 식생활을 넘어 문화까지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무수한 해양생물을 조사했던 정약전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육지생물의 고기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는 아우 약용에게 편지를 보내 육류에 대한 그리움을 하소연한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들깨 한 말을 보내며, 개를 잡아 이것으로 양념해서 아쉬움을 달래보라고 답하기도 했다. 정약전이 육류에 대해 느끼는 그리움은 단순히 식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배 이전에 누렸던 육지에서의 자유도 포함된 것이리라.
[해타海鮀 속명 해팔어海八魚]
몸은 연하게 엉켜 있어 타락죽과 같고, 모양은 중이 삿갓을 쓴 것과 같다. 허리에는 치마를 달고 발을 늘어뜨린 채 물속을 떠다닌다. …중략… 나아갈 때에는 질퍽질퍽 휘청거리는 것이 우산을 떠올리게 하는 바가 있다. …중략… 창대가 예전에 해파리의 배를 한 번 갈라보았더니 호박의 썩은 속과 같았다고 한다.
- 본문 p.355~356
손암이 해파리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읽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나풀거리는 젤리질의 해파리가 바닷속을 넘실넘실 유영하여 다가올 것만 같다. 그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해양생물들의 생김새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해저 2만리>의 아로낙스 박사가 실존했더라면 이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조사어釣絲魚 속명 아구어餓口魚]
큰 놈은 두 자 정도이다. 모양은 올챙이를 닮았다. 입이 매우 커서 입을 열면 몸 전체가 입처럼 보일 정도이다. 몸빛깔은 빨갛고 입술 끝에 의사가 쓰는 침만 한 낚싯대가 2개 있다. 길이는 4~5치 정도이다. 낚싯대 끝에는 말총 같은 낚싯줄이 달려 있다. 낚싯줄 끝에 밥알만 한 하얀 미끼가 달려 있는데, 다른 물고기가 이것을 먹으려고 다가오면 확 달려들어 잡아먹는다.
- 본문 p.370~371
아귀에 대한 설명은 더욱 탁월한데, 특히 낚시하는 습성을 묘사한 것은 눈 앞에서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다. 그가 설마 물 속에서 자맥질을 하며 관찰한 것은 아닐테고, 아마 아귀가 수면 가까운 곳으로 헤엄쳐 왔을 때 그 모습을 관찰했을 것이다.
세밀한 삽화는 현산어보의 매력을 더하는 데 한몫 한다. 흑백 그림인 덕에 거부감이 적게 들어서 좋다. 책을 읽고 또 읽어도 계속 손이 간다. 볼 때마다 재미있어서 이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싶은 책! XD
※앞서 읽었던 <현산어보를 찾아서> 1권↓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리-양식]Made in America : Our best chefs reinvent comfort food by Lucy Lean (10) | 2016.05.09 |
---|---|
[잡지]매거진B 40호 : 산펠레그리노(2015년 10월) (16) | 2016.04.28 |
[그림]사치와 평온과 쾌락 by 장 자끄 상뻬 (8) | 2016.04.18 |
블로그의 정보
Chelsea Simpson
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