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일반]장미 Rose(창해ABC북 042)
by 첼시
장미라는 이름 : 벌어진 꽃잎부터 깊숙이 자리잡은 뿌리까지
창해ABC <장미 Rose>. 동 시리즈 중 식물을 다룬 것은 처음 읽어본다(<차>, <커피> 등도 식물성이긴 하지만 분류가 다르니 논외로 하고). 이번 편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지?'였다. 집필진의 전문성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히 전문적인 수준의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전문성이었다. 책 내용의 절반 이상이 장미를 재배하고, 품종을 개량하는 원예 기술과 관련된 것이었다. 당장 항목을 나열하자면 '가지치기, 꺾꽂이와 휘묻이, 병충해, 접붙이기, 촉성 재배, 관상용 장미 원예, 신품종 개발, 원예학적 분류'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장미 전문가인 집필진들이, 이 책에 대한 의뢰를 받았을 때 쾌재를 부르며 "좋았어! 우리가 아는 모든 장미 원예 기술을 전수해주겠어!"라는 각오로 기합을 잔뜩 넣고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독자들은 대개의 장미를 최종 생산물로서, 소비재로서 접했을 것이다. 줄기 끝에 매달린 꽃송이와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꽃대만이 우리가 아는 장미인 셈이다. 집필진들은 이 참에 장미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했다. 상당히 지엽적인 원예 기법까지 소개한 터라, 책 제목을 <장미>가 아니라, <장미를 가꾸는 법>으로 바꾸는 게 더 적절할 듯 싶다. 나의 감상문 역시 책에 대한 것 반, 장미를 보며 느끼는 것 반 정도로 가볍게 적고자 한다.
철학이 있는 화원 : 야생화에서부터 돌연변이 신품종까지
장미는 약 3,500만년 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나타났고, 느린 속도로 진화했다(소위 포유류와 속씨식물, 즉 꽃피는 식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신생대가 6,500만년 전에 시작된 걸 생각한다면, 장미는 꽤 어린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장미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하는 식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순수한 식물학적 분류 외에도 겉모양, 개화의 양과 형태 등과 관련된 원예학적 분류가 더해진다.
장미를 재배하는 정원사들은 경험을 토대로 여러 변종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실험실 연구원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해낸 신품종은 접붙이기로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보통이다. 식물 재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씨뿌리기'는 야생종에만 해당되는 방법이다. 정교하게 개발된 신품종의 경우, 파종했을 때 돌연변이 등 종잡을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케, 부토니에 등의 꽃다발에 이용되는 절화용 장미는 온실을 이용한 촉성 재배를 통해 개화시기와 양을 조절한다.
장미와 이야기 : "꽃들은 연약하고 순진해. 그래서 가시를 가지고 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소제목에 등장하는 인용구는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왕자가 그의 장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작품 속에서의 장미는 허영과 변덕으로 어린 왕자를 길들이려고 하고, 그는 장미의 존재 덕에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녀(?)에게 매혹당한다. 이후 다른 별을 여행하면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꽃들을 발견하고 어린 왕자는 몹시 혼란스러워한다. 유일한 존재인 줄 알았던, 그래서 소중한 것이라 생각했던 장미가 지천이라니!
"잘 가라. 내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하기 위해서 되뇌었다.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내 꽃을 위해서 허비한 시간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어린왕자는 되받아 말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고 산단다.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 中 by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말한다. 그의 장미가 특별한 까닭은 그가 장미를 위해 허비했던 시간과 정성 때문이라고.
글을 읽으면서 후추가 생각났다. 별처럼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후추가 특별한 이유는, 내가 후추에게 쏟은 애정과, 후추를 위해 보낸 시간 때문인 것이니까. 수없이 많은 고양이 무리가 강물처럼 내 곁을 흘러서 지나간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후추가 가장 소중하고 어여쁘다. 후추가 내게는 100%의 고양이니까! XD
이게 장미 책 감상문인지, 어린 왕자 감상문인지, 아니면 후추에게 바치는 연서인지...ㅇ<-< 원예기술을 빼고 나니 쓸 내용이 대폭 줄어서 딴 소리가 좀 길어졌다. 이 책에는 <어린 왕자> 외에도 중세의 운문 작품인 <장미 이야기>에 대한 소개도 있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 등 회화에 등장하는 장미 등도 언급하고 있으나, 정말 스치듯 소개만 하고 있다. 이 집필진들은 정말 원예 기술에 모든 것을 걸었나보다..ㅇ<-< 개인적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EPL의 로즈 더비 같은 게 소개되었으면 했었다(프랑스 책이어서 영국 리그 언급은 곤란하겠지만.. 아니지, 장미 전쟁도 실려 있는데 장미 더비라고 안 될 게 뭐람?!). <장미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읽기도 했었고, 충분히 다룰만한 요소였는데 왜 넣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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