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잡지]매거진B 45호 : 록시땅(2016년 4월)

by 첼시

반응형

록시땅 L'OCCITANE : 계절과 맞닿은 기억

그동안 매거진B에서 다루었던 주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록시땅! 처음 써본 록시땅은 모 호텔의 욕실용품이었는데 그때 비치되어 있던 제품은 버베나 라인이었다. 처음에는 용기가 예뻐서 눈이 갔고, 뚜껑을 열어보고 좋은 향기에 끌렸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로션을 몸에 발랐을 때 순한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날카로운 첫만남의 각인 효과 덕인지, 록시땅 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것들이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 커튼을 뚫고 부서지는 햇살, 창 밖을 내다보며 마시는 커피 같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록시땅은 내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휴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1976년 올리비에 보쏭이 프로방스의 마르세유에서 설립한 록시땅(L'OCCITANE). '설립'이라는 단어가 좀 거창한 느낌이 드는데, 덧붙여 설명하자면 창립자 보쏭이 민간요법으로 비누를 만들던 것에서 출발했다. 브랜드명인 록시땅은 프랑스 루아르강 남쪽에 위치한 옥시타니아 지역의 여인을 일컫는 l'Occitane에서 따온 것이다. 록시땅 제품의 정체성을 담당하는 한 축은 '자연'이다. 스킨케어, 향수 등에 사용하는 라벤더, 버베나, 이모르뗄 등의 각종 식물은 프로방스에서 재배된다. 또한 신제품의 출시 시점을 원재료를 수확하는 시기에 맞추기도 한다.

 

나는 봄이 되면 꼭 록시땅 로즈 라인을 사용하고, 겨울이 되면 록시땅의 시어버터, 라벤더 핸드크림을 가지고 다닌다. 장미의 부드럽고 달콤한 내음, 시어버터 핸드크림의 파우더리한 향기와 촉촉한 느낌, 라벤더의 청결하고 쌉쌀한 냄새까지... 향기를 음미할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록시땅은 매 순간 나에게 '계절과 맞닿은 기억'을 선사한다.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 록시땅, 그리고 프로방스

록시땅을 지탱하는 또다른 축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역이다. 매거진B는 록시땅에서 프로방스 익스피리언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파트리시아 몽테시노(Partricia Montesinos)의 인터뷰를 통해서 양자의 관계를 정리한다. 그녀는 록시땅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소박한 생활이 주는 기쁨을 중시하는 '프로방스식 삶'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기억을 더듬어 내 머릿속에 있는 프로방스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보니 알퐁스 도데와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올랐다.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창작했던 알퐁스 도데. 그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 처음 접했던 도데의 단편집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를 열번도 더 넘게 읽었다. 뤼베롱 산맥을 배경으로 한 「별」, 아비뇽을 배경으로 한 「뀌뀌냥의 신부」, 그 외 「아를의 여인」, 「스갱 씨의 염소」 등 지금도 작품 속에 등장하던 프로방스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도데의 작품 대부분은 묘하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요즘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밤이 낮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더 강렬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들로 물든 밤…, 어떤 별들은  레몬빛을 띠고 있고, 다른 별들은 불처럼 붉거나 녹색, 파란색, 물망초빛을 띤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中>

반 고흐의 작품 역시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내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 Café terrace at night」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Starry night over the Rhone」가 모두 아를에서 탄생했다. 특히 위의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밤하늘에 대한 감상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남동생 테오에게 털어놓았던 것처럼, 그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검은색을 쓰지 않고도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을 멋지게 그려냈다. 

두 거장 덕택에 내게는 프로방스 하면 마법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그런 환상적이면서 긍정적인 인상이 록시땅에게도 연결되어서 브랜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는 모양이다. 당장 도데와 고흐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매우 설레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

 

다만 이번 호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브랜드 그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록시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프로방스 지역과, 프로방스식 삶에 대한 서술에 치중했는데, 단순히 공통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창업자 올리비에 보쏭을 포함해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인원과 진행한 개별 심층 인터뷰와 그 외에 단편적인 인터뷰도 다수 실었는데, 인쇄매체인 잡지에서 다루기에는 인터뷰 분량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잡지가 특정 브랜드의 카탈로그화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이긴 했지만 좀더 록시땅이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블로그의 정보

Chelsea Simpson

첼시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