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보통의 존재(black edition) by 이석원
by 첼시얼렁뚱땅 100번째 '책' 글이다(공개글 기준). 좀더 의미있는 걸 쓰고 싶었는데 순서 조절에 실패...ㅠ
보통의 존재,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겸 보컬 이석원. 그의 책 『보통의 존재』가 출판되었다는 소식은 오래 전에 들었지만 희한하게도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허구성을 띠고 있는 음악과 달리, 산문은 그의 내면을 보다 투명하게 반영할 것이라 짐작되었고, 나는 그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보문고 월별 사은품에 선글라스 케이스가 떴는데, 그 사은품은 이벤트 대상에 해당하는 도서를 구입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난 그 물건이 갖고 싶었고, 그런 불순한 동기에서 책을 고르다가, 이벤트 대상에 『보통의 존재』 블랙 에디션이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그래도 나름 언니네이발관 팬인데 책 한 권 정도는 갖고 있어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시시한 이유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책이 시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내 태도를 자조적으로 적었다).
이석원(1971~)
책 제목인 '보통의 존재'는 언니네이발관 5집의 앨범명이자 타이틀곡인 '가장 보통의 존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작가 소개말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며 약간 갸우뚱해졌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게 과연 '섬뜩한 일'인 것일까? 역시 이석원과 나의 가치관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보통의 존재임을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하고, 내가 품고 있는 이 모든 평범한 자질들을 정말 사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글이 몇 페이지 내외의 초단편 위주여서 소제목이 아주 많다. 그래서 차례는 따로 남기지 않는다만... 내 눈길을 끌었던 소제목은 소라 누나. 여기서 소라 누나는 당연히 가수 이소라를 지칭한다. 차례 끄트머리에 각주로 붙어있는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의 스타일을 따릅니다."라는 문구가 이석원답다고 생각했다. 나도 맞춤법에 어긋나는 걸 알지만 내 마음대로 쓰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돈까스'는 돈가스가 맞지만, 난 돈까스로 써야 더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 같다. '닭도리탕'은 닭도리탕이라고 해야 그 매콤한 국물과 보드라운 감자의 속살, 보글보글 끓는 느낌이 생생하고, '김밥'은 '[김:밥]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김빱]이라고 불러야 특유의 참기름향과 단무지의 아삭거림이 더 살아나는 느낌이 들고. :D
보통의 존재를 벗어나려는 보통의 인간들
가름끈이 들어있는 부분을 펼쳤을 때, 마침 펼쳐진 페이지의 사진과 가름끈의 휘어진 모양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팔을 뻗고 있지만 로프에 손가락이 닿지 않는 느낌. 이석원이 이상향에 대해 갈구하는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는 5집 앨범을 작업하면서도 거의 편집증에 가까울만큼 완벽함을 추구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가장 보통의 존재』는 지금도 두고두고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난 허술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불안에 몸부림치는 3집과 4집이 더 좋았지만!
난 왜 이 글을 읽으면서 딴죽을 걸고 싶은지 모르겠어!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온통 그렇게 하고 싶은 내용이 가득했다. 나도 내 식구인 후추를 아주 사랑하고 아끼지만, 후추가 나에게 해주는 위로의 절반은, 마치 내가 산등성이를 향해 소리쳤을 때 돌아오는 메아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후추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고, 후추는 나에게 가르릉거리며 몸을 비비는 이 일련의 상호작용이 주는 울림이, 어느 정도는 나의 내면이 투영하는 그림자로부터 기인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석원의 글을 읽는 내내 기분이 편치 않았던 것은, 그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비치는 그림자가, 예전의 기억을 지분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 가지가 못마땅한 와중에 한 가지 정도는 와닿는 부분이 있다. 어딘가에서 위 문구만 읽고―이석원의 글이라는 걸 알기 전이었다―깊이 반성했던 적이 있다. 남녀 관계의 문제 그 이전에, 말이라는 걸 한 번 내뱉고 나면 어떤 의미로든 주워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쏘아붙였던 비수들이, 폭풍우가 지나간 뒤 후회를 동반한 화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제는 다음을 생각하며 말을 아끼려고 한다. 나의 변덕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모르는 일이고, 사람 일에 끝이라는 건 정말 없으니. 애초에 기대를 접으면 실망할 일도, 화낼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쉽게 망각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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