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추리]지혜 by G. K. 체스터튼
by 첼시가장 끔찍한 범죄를 제일 경건하게 맞이하는 순간
앞서 1권에서도 얘기했지만, 브라운 신부에게서는 포와로보다는 홈즈의 향기가 더 강하게 난다. 브라운 신부가 홈즈처럼 냉철한 천재―자비로워야 하는 성직자여서 그렇지, 천재가 맞기는 맞다―여서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가설을 세우고, 각각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본 뒤, "A,B,C 중 A,B,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C이다."라고 결론짓는 그의 모습에서 홈즈와 닮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제2권 『지혜』에는 총 열두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통로에 있었던 사람>, <산적들의 천국>, <보라색 가발의 비밀>, <징의 신>, <글라스 씨는 어디에?>, <시저의 얼굴>, <존 불노이의 기이한 범죄>, <크레이 중령의 샐러드>,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 <펜드라곤 가문의 몰락>, <기계의 실수>, <허쉬 박사의 결투> 순이다.
플랑보는 1권 중반 쯤에서―스포일러가 될까봐 그때 적지는 못했었지만―손을 씻고 탐정이 되었다. 사실 직업 탐정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고, 본인이 내킬 때에나 사건에 착수하는 듯.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브라운 신부이기에, 플랑보는 단순 조력자 정도로 종종 등장한다. 사건의 흐름을 엉뚱하게 짚어서 브라운 신부에게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는 걸 보면, 작가는 플랑보를 헤이스팅스보다는 능청스럽고, 왓슨보다는 대범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더 어려운 트릭을! 더 경이로운 사건을!
1권 후반부에서부터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체스터튼의 트릭은, 홈즈나 크리스티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쉬운 편이다. 아마 작품들이 단편이기 때문에 사건의 복잡도 자체가 낮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2권에서도 몇 편 정도는 범인이라든지 트릭을 맞출 수 있었다(첫번째 작품인 <통로에 있었던 사람>부터 너무 쉬웠다 ㅠㅠㅠ). 그 때 나의 기분은 '맞혀서 기뻐!'가 아니라, '더 어려운 트릭, 더 경이로운 사건을 원해!'였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내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천재들의 활약에 경탄하는 그 때이니까.
1권보다 2권이 더 쉬워서 재미가 덜한 것도 있었지만, 사건의 유형이 내 구미를 당기지 못했던 것도 한몫 했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범죄(...)는 정교하게 계산된, 우연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 그런 것들인데, 이번에는 뭔가 주술적인 요소와 우연성의 비중이 커서 아쉬웠다.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책을 읽어서인지는 몰라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브라운 신부는 성직자를 넘어서 저주를 퇴치하려는 퇴마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보라색 가발의 비밀>. 다른 것들도 좋았지만 이 소설에 비하면 그럭저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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