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예술]코로 Corot(창해ABC북 049)
by 첼시"현대 풍경화 유파의 선두에 코로가 있다." by 보들레르, 1845
코로는 프랑스 태생으로 유복한 부모의 도움을 받아 화가 수련을 받았다. 그는 스승 미샬롱, 장 빅토르 베르탱으로부터 신고전주의의 풍경화 개념을 습득했고, 그래서 자연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보다는 주제가 담긴 역사적 풍경에 매력을 느꼈다. 스승의 충고로 떠난 첫 이탈리아 여행은 코로의 작품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독자적 미학을 구축하고 1827년 처음 살롱전에 작품을 선보였다.
프랑스로 돌아온 코로는 야외에서 스케치했던 풍경을 토대로 성서의 장면과 신화를 교차시키며 최초의 역사적 풍경화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는 단지 실외에서의 드로잉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작품을 다듬어가며 완성시켰다. 그는 그림의 주제가 이제는 문학적·역사적·종교적 이야기라기보다는 화가의 감정에 대한 추억이고, 감상자에게 이를 호소함으로써 교감을 나눈다고 보고 "우리가 진정 감동을 받았다면 그 감정의 진솔함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는 1850년대부터 인물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에 이르러 그는 여성을 주요 탐구 테마로 택하고 다양한 변주를 통해 그 대상을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수련 초기에 연마했던 야외 풍경화에 더해 코로의 작품세계를 다채롭게 만들었고, 덕분에 그는 인물화와 풍경화 모두에서 동일한 자취를 남기게 된다.
뒤늦은 영광
코로의 재능이 대중에게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1845년까지도 수집가와 화상들은 코로의 작품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들레르, 코티에, 샹플뢰리와 같은 소수의 비평가들만이 코로를 옹호하며 그의 순수한 시선과 사실주의에 대한 감각을 높게 평가했다.
허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애호가들은 코로가 신고전주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역사적 풍경화의 영역을 쇄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덕분에 말년에 코로는 모두에게 절대적 준거가 되었으며, 쇄도하는 작품 주문에 응하기 위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야만 했다.
왜곡된 신화에 가려진 코로의 또다른 모습
코로는 연구하기 힘든 화가로 알려져있다. 특히 그의 말년에, 그리고 사후에 전개된 풍문이 그의 작품을 분석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코로의 친구들은 기정사실화된 그의 순박함을 내세우며 이를 일종의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허나 코로가 강조했던 요소는 작품 속에서 발현되어야 하는, 자연에 대한 순박한 시선이었다. 이는 왜곡된 형태로 와전되어 그의 인격 자체를 '순박함'으로 포장하며 그 개념 자체를 뒤죽박죽 섞어버렸다.
비평가였던 고티에와 보들레르는 코로의 '순박함'을 자연에 대한 진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기며 칭송했다. 그들은 코로의 의도적인 순박함이 끈기있게 자연을 습작해온 결과물임을 입증하면서, 오랜 기간의 연마를 거친 독창적 자발성을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해냈다.
또다른 평가는 코로가 고대 예술에 무지했으며 문화적 소양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 연극, 음악, 문학을 사랑했으며, 중등교육과 회화 수업을 받던 시절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견고한 수련을 쌓았다. 그가 비록 미학의 흐름에 무심한 독립적 정신의 예술가이긴 했으나, 그는 결코 변두리에서 맴도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의 예술은 선구자들과 동료의 업적 위에 단단하게 구축되었고, 그가 회화의 역사와 맺고 있는 관계 역시 긴밀하고도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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