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교양-음식]한식의 품격 by 이용재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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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번역가, 건축 칼럼니스트. 한양대학교와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 소재 건축 회사 tvsdesign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에스콰이어』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으며 요즘은 홈페이지(http://bluexmas.com/)에 주 평균 3회의 글을 올린다. 『외식의 품격』, 『일상을 지나가다』를 썼고 『실버스푼』(근간),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뉴욕 드로잉』, 『작가의 창』, 『창밖 뉴욕』, 『완벽하지 않아』 등을 옮겼다.

- 본저 책날개에서 인용


※상기한 저서 중 내가 읽어본 책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사실 난 이용재 작가의 기간만 오랜 독자인데, 그 이유는 그의 글 덕분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음식,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식의 개념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그의 블로그에 방문해서 글을 읽기도 하고, 그가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을 이렇게 구입하기도 한다.

『한식의 품격』 역시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주문했다. 하지만 그의 문체가 아주 상냥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심리적 면역력(...)이 좀 튼튼할 때 읽는 게 좋겠다 싶어서 한동안 갖고만 있었다. 최근 기분이 조금 명랑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이용재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책장을 펼친 뒤 꽤 짧은 시간 내에 마지막 장까지 즐겁게 완주할 수 있었다.


한식의 품격을 논하기 이전에, 당신의 외식은 '안녕'하십니까

표지의 '적폐 청산'이라는 표현이 요즘 워낙 범람하고 있다보니, 조금은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문구가 적힌 띠지를 벗겨내고 나니 산산조각난 접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히려 이쪽이 보다 통쾌해보이고 그래서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만약 『외식의 품격』을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한식의 품격』 이전에 그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자가 맛의 영역에 막 발을 내디딘 초보자를 위한 기초 이론 단계의 설명서라면, 후자는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한식에 어떤 개선사항이 필요한지 지적하고, 또한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응용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식의 품격』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배경 지식을 쌓고 나면, 『한식의 품격』 역시 받아들이기 한결 쉬워진다. 순서대로 읽기를 추천한다.


사실 나도 예전에 『외식의 품격』을 읽고 감상문을 기록했는데 지금 읽어보니 내 글의 수준이 조악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링크를 부러 넣지 않았다. 솔직히 되새겨보니 창피하다.


한식의 제1과제 : 취향의 범주를 벗어난 '완성도'의 부재

앞서 출판한 『외식의 품격』에서도, 이번 『한식의 품격』에서도 이용재 작가의 주장은 한결 같다. '취향'과 '완성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맛없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음식 외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맛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한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배태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는 책을 1부-정신, 맛의 원리2부-몸, 조리의 원리로 나누어 서술한다. 전반부에서는 맛의 기본을 이루는 다섯 가지(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에 대해 설명하고, 한식의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섯 가지 맛(매운맛, 고소함, 구수함, 시원함과 뜨거움, 쫄깃함, 담백함과 슴슴함)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분석한다.

후반부에서는 한식 밥상의 구성 요소(밥, 반찬, 김치, 국물, 볶음, 직화구이, 활어회, 전, 만두·두부·순대·김밥과 같은 일상 음식, 술, 후식)를 고루 훑는다. 그리고 그동안 전통과 정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있었던 한식의 조리법을 개선할 필요성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모 곰탕집에서의 경험을 서술한다. 끈적거리는 바닥, 정돈되지 않은 화장실, 그나마 '전통'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듯한 놋쇠그릇, 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겨 말라가는 파까지. '전문점'이라고 내세우는 곰탕 역시 다른 요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환경은 물론이고, 음식도 빈약하다. 식당의 전통과 유서에 관계 없이 상당수가 이러한 현실이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의 부재'에 대해서 지적한다. 필연적으로 현재 한식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밖에 없다. 위의 프롤로그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독자라면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기 편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식의 상향평준화에 대해 역설한다. 이를 위해 때로는 전통, 혹은 정성으로 포장되어있던 성역을 과감하게 깨뜨릴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식재료에는 정확한 이해와 충분한 고민을 거친 조리법을 적용하고, 먹는 이에게는 완성도가 높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만드는 이에게는 그 결과물에 따르는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사'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가 각자의 영역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야한다는 것이 본저의 핵심이다.


한식의 단조로운 스펙트럼 : 과잉과 결핍의 양극화

'매운맛'의 영역은, 한식이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즉, 맛과 식재료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고추장에 매운 고추를 찍어먹는 민족, 얼큰하고 펄펄 끓는 탕류를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민족. 과연 한국은 매운맛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의 매운맛에는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고, 그저 '맵거나 혹은 더 매운' 음식이 범람하는 것을 경계한다.

한식에 깊숙이 침투해있지만 그동안 깊은 고찰은 부족했던 '매운맛'. 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위해 그는 고춧가루에 대한 이해, 고추 활용법의 개선, 매운맛 측정 기준의 국제 표준 도입이라는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하바네로와 할라페뇨 외에도 다채로운 종류의 고추로 널리 알려진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를 빌려와 고추의 요리법을 다양화해볼 것을 제안한다. 고춧가루, 고추장, 혹은 날것 그대로 쓰이는 조리법의 단조로움을 탈피해, 직화로 고추를 구워낸 뒤 질긴 외피를 벗겨내거나, 말린 고추를 그 자리에서 바로 갈아 풍부한 향을 즐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식에서 매운맛이 '과잉' 상태라면―심지어 그 표정은 단조롭기까지 하다― 짠맛은 '결핍'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방증하는 것이 '담백함 또는 슴슴함'에 대한 칭송이다. 별다른 양념 없이 삶아낸 비계 붙은 돼지고기, 초장을 듬뿍 묻힌 흰살 생선회, 이렇게 '담백함'을 내세우는 음식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매운맛과 단맛이 주도권을 다투는 가운데 지방이 가세하고, 단지 '짠맛'만 부족한 경우가 많다. 간이 모자라는 상태로 일어나는 맛의 불균형이 '슴슴함'이라는 또다른 미명 하에 이상적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의 식생활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쾌락―설탕, 소금, 지방―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담백함과 슴슴함의 남발이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현재의 설탕, 소금, 지방 과잉을 직시하는 한편, 이 요소가 부족한 상태를 굳이 담백함과 슴슴함에 욱여넣는 대신 달지 않다, 짜지 않다, 느끼하지 않다고 정확하게 묘사할 것을 권한다.


고민 없이 되풀이되는 습관의 고착화

저자는 직화구이라는 조리법에 '조리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그는 외식 메뉴를 대표하는 삼겹살, 숯불갈비, 이런 것들이 과연 대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대부분의 직화구이집에서 이루어지는 '그릴링(grilling)'은 조리를 손님에게 일임하는 구조이다. 업장에서 담당하는 것은 핵심 재료인 고기를 손질하고 불판이나 반찬을 관리하는 등 기본 접객에 그친다. 불판 위에서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집게, 미처 식기도 전에 쌈장에 파묻혔다가 입 속으로 들어가는 살점, 쓰디쓴 소주 한 잔을 넘긴 후 남는 것은 고기 좀 씹었다는, 혹은 목에 기름칠 좀 했다는 만족감 뿐이다.

그는 직화구이라는 조리법 자체가 갖고 있는 결함을 식재료(부위별 특성, 크기 등), 도구, 열원 등으로 나누어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 간을 언급하면서 앞서 지적했던 조리의 외주화에 대해서 재상기한다. 식재료의 맛을 책임지는 기본적인 요소가 소금 간인데 현재의 직화구이는 이를 손님에게 맡김으로써 일종의 하청을 주는 셈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처럼 날것에 가까운 재료를 내놓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보다는, 주방에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리를 거친 '요리'를 내놓는 것이 균일한 맛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발짝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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