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추리]수상한 라트비아인 by 조르주 심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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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저자

조르주 심농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1-05-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전 세계 독자를 열광케 한 형사 매그레 반장이 온다!대문호 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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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거장, 조르주 심농과 <수상한 라트비아인>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조르주 심농의 대표작 '매그레 반장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심농이 자신의 실명으로 집필한 최초의 소설이며, 영국 BBC,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드라마화되었다. 하지만 심농의 실명으로 첫 출간된 것은 이보다 나중에 쓴 <갈레 씨, 홀로 죽다>라는 작품이다.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는,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 좋은 글을 써주시는 심명보님의 댓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심명보님의 블로그는 여기 → http://bosim.kr/)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는데 검색해보니 벨기에를 넘어서 유럽 전역 추리소설계의 거장이었다. 또다른 벨기에의 작가 중에는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으로 유명한 아멜리 노통이 있다(추리작가 아님).

 

내 마음에 쏙 드는 추리소설 작가를 찾는다는건 참 힘든 일이다. 심농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도일과 푸트렐 외에 좀더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도 여러 권 갖고 있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추리 방식이 아니어서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는다.

 

 

 

매그레 반장, 그는 누구인가?

 

매그레 반장은 조르주 심농의 상징적인 캐릭터로, 도일의 셜록 홈즈,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 같은 입지의 인물이다. 참고로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무려 열아홉 권이라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매그레는 거대한 통뼈와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바윗덩어리 같은 거구의 풍채를 자랑하는 마흔다섯 살의 사나이다. 언제나 담뱃가루를 다져넣은 파이프를 물고 있으며, 강인한 육체에서 비롯한 두둑한 뱃심과 강철같은 정신력의 소유자다. 그는 내가 지금껏 읽은 추리소설 속 탐정 중 가장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면서 제일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인물이다.

홈즈도 그렇고 반도젠도, 포와로도, 마플도, 뭔가 사연이 있는 체, 짐짓 무심한 체하는 태도가 보통 사람과 자신을 구분지으려는 것처럼 보여서 가끔 아니꼽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너희 평범한 인간에 비해 나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추리하지만, 내가 얘기하는건 다 정답이지롱! 뭐 이런 느낌?)

반면에 매그레 반장은 암호로 작성된 전보를 술술 해독하고,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찾아내지만 때로는 불청객처럼 호텔에서 잠복하다가, 호텔 손님들에게 위화감을 준다고 호텔 지배인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수사를 진행하면서 바게트에 속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시켜먹고, 시종일관 파이프를 물고 돌아다닌다. 동료에게 일어난 사고에 분노하면서 이성을 잠시 잃을 뻔하다가(홈즈에게서는 참으로 찾기 힘든 모습이지) 불굴의 의지로 흔들리는 감정을 다잡는 등 인간적인 매력이 엿보이는, 의리의 사나이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홈즈가 냉철한 자세를 잃고 감정을 내보이는 일은 참으로 흔치 않은데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장면이 궁금하다면 도일의 작품 <세 번째의 개리뎁>을 보시라.

 

 

매그레 반장이 재채기를 하면 독자는 독감에 걸린다

 

앞서 홈즈, 포와로 등 철인 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잘난체하며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는 홈즈나 반도젠 박사, 모든 걸 알고있다는 듯 의뭉스러운 포와로나 마플 양은, 따지고보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을 마무리할 때 쯤에는 모든 범죄의 트릭과 배경, 범인의 심리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니 말이다. 그런데 심농의 매그레 반장은 보통 경찰에 비해(그러고보니 내가 읽은 추리소설의 주인공 중 몇 안되는 공무원이군) 좀더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는 있으나 홈즈처럼 소름끼치는 추리력(독심술 수준이지)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포와로처럼 '그의 작은 회색 뇌세포'를 발동시킬 수도 없는 보통의 인간이다.

그렇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매그레 반장의 생각과 행동과 대화를 통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자로서는 사건의 현장에 있는게 아니다보니 반장이 범인 색출에 애를 먹는 순간마다, 뭐가 문제인지 감을 잡기 힘들다. 매그레 반장이 작은 위기에 봉착하는 순간, 독자는 혼돈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도 아니고 대체...OTL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럼 얘하고 쟤하고 무슨 관계지?'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까칠할지언정 모든 실마리를 낱낱이 풀어헤쳐 하나하나 떠먹여주는 도일과 푸트렐에 길들여져있던 터라. 이 작품의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거의 일주일을 출퇴근 시간 내내 붙들고 골몰해야했다. 그런데 한번 읽은 것으로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아 지난 주말에 또 다시 읽었는데 사건의 전말이 이렇게 쏙쏙 들어올 수가! 처음 펼쳤을 때의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정답을 일단 알고나면 더이상 간단할 수 없는 사건의 전말. 그게 추리인 것 같다.

 

 

라트비아인, 그는 또 누구인가?

 

초록색 외투에 금빛 콧수염, 외견 연령이 32세로 추정되는 이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소설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가슴에 총을 맞고 살해된 채로 발견됐으나 놀랍게도 오스발트 오펜하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살해당한 자를 라트비아인A, 새로이 나타난 자를 라트비아인B로 놓고 편의상 A, B로 통칭하겠다.) 매그레 반장은 각종 범죄의 접점이었던 이 라트비아인을 뒤쫓던 도중 A가 살해당하는 장면과 시체를 목격하였으나, 직감적으로 제2의 라트비아인 B가 등장한 것이라 판단하고 그 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는 A의 주머니에서 찾아낸 머리 타래가 페캉에 살고 있는 선원, 올라프 스완의 부인 베르트의 것임을 알아내고 사건의 실마리를 잡으려 페캉 인근에서 잠복하다가 B와 매우 닮은 러시아인 표토르 유로비치를 맞닥뜨린다.

매그레는 표토르의 뒤를 밟아 <시칠리아의 임금>이라는 여관을 찾아내고 그 곳에서 그의 유대인 정부 안나 고르스킨을

만나 표토르에 대해 캐묻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다시 B가 묵고있는 호텔에 돌아와 죽치는 신세가 된다. 이 때 매그레는 B의 일행인 백만장자 모티머 레빙스턴 부부를 미행하려다가 총에 맞는 사고를 당하고 그와 숱한 수사를 겪으며 손발을 맞춰왔던 토랑스 요원까지 잃고 만다(토랑스는 마취당한 후 심장에 바늘을 찔려 살해당한다). 이로 인해 매그레는 이제 이 사건이 '그들과 나 사이의 문제'가 되었다고 인식하고 B를 체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매그레는 B와 독대 후, 그를 압박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하지만 별안간 등장한 안나 고르스킨의 훼방으로 인해 B를 놓치고 그의 일행이었던 모티머 레빙스턴마저 살해당하는 위기상황에 처한다.

매그레는 다시금 <시칠리아의 임금>여관을 찾아가 헤집어놓은 끝에 A와 B가 쌍둥이라는 증거를 찾아낸다. 끈질긴 잠복과 미행 끝에 그는 결국 B를 추적해 체포하고, B는 매그레와 하룻밤을 보내며 굴곡진 인생사를 털어놓는다. 라트비아인A(=피에트르 요한손, 쌍둥이의 동생, 오스발트 오펜하임, 스완 올라프)는 번뜩이는 카리스마와 명석한 두뇌로 엘리트 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라트비아인B(=한스 요한손, 쌍둥이의 형, 표도르 유로비치)는 늘 A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A의 옆에서 수표, 신분증 위조 등의 잡다한 일만 도맡아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베르트마저 A의 속임수로 인해 빼앗기고 만다. B는 결국 A를 살해하게 되고 그 후 A를 가장하여 대역의 임무를 잠시나마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매그레 반장이 애당초 뒤쫓던 범죄의 원흉은 A였고, 그가 살해당하기 직전부터 이 소설이 시작된 셈이다. B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털어놓은 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후, 매그레는 안나 고르스킨의 도움으로 토랑스의 살해범인 페피토 모레토라는 자까지 성공적으로 검거하며 사건을 마무리한다.

 

A와 B에 대한 구분만 분명히 하면 사건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작품이다. 다만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다보니 소설 속 트릭이 경이롭게 다가오기보다는 이미 닳고 닳아 익숙해져서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움이나 재미는 좀 덜한 편이다. 독자가 머리를 부지런히 굴려야만 내용에 대한 가닥이 잡히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소설이다. 이 단행본을 출간한 열린책들에서는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 정도만 제공하고 있어서 작품 속 사건이 짧은 시간 내에 명쾌·간결하게 이해되는 편은 아니다. 책값이 조금 더 올라가더라도 작품 해설을 따로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재미는 있는데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