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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현산어보를 찾아서③ :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by 이태원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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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섬 : 다시 찾은 손암(巽庵) 선생의 유배지

근 1년만에 펼쳐보는 『현산어보를 찾아서』(이하 '『현산어보』'). 사실 이 책은 벌써 세번째(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한 번, 나중에 전권 마련하고 두 번) 읽는 것이어서, 1년만에 읽는다고는 해도 별 부담없이, 익숙한 골목길 누비듯이 편하게 즐겼다. 원래는 작년에 2권 감상문을 쓰면서 연이어 나머지 책을 다루려고 했는데, 이 저서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솔직히 그것 때문에 이 책을 넘겨보기는커녕 손을 대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서 한동안 덮어두었었다.


『현산어보』 1권에서는 손암(巽庵) 정약전의 생애와 그의 저서 『자산어보』, 그리고 그 배경인 흑산도의 생태계 환경을 개괄적으로 기술했고, 2권에서는 정약전의 학문적 토양과 그가 탐구했던 해양생물을 보다 깊게 파헤쳤다. 이번 3권에서는 그 저변을 넓혀서 정약전과 그의 형제 약용, 그리고 당대의 실학자였던 홍대용, 김석문 등의 세계관과 철학을 다루는 한편, 청어, 갈치, 오징어 등 익숙한 해산물이 과거에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사료를 통해 설명한다.


역사 속의 청어

저자는 『현산어보』 2권에서 무려 여덟 개의 꼭지를 활용해 청어에 대해 상술한다. 여기서는 청어라는 단일 어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같은 계군에 속해있는 어종 및 꽁치, 그리고 이를 이용해 만드는 과메기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청어는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제물로 바쳐질 뿐만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물고기였다. 비웃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 동어, 구구대, 푸주치, 눈검쟁이, 과미기, 과목이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웠던 것은, 청어가 그만큼 널리 사랑받는 생선이었음을 뒷받침하는 방증이다. 정약전 역시 기름지고 값싼 이 물고기가 국·구이·젓갈·포에 모두 좋다며 그 맛을 칭찬했다.


송한련이 말하기를 청어 천여 두름을 잡아서 널었는데, 내가 간 동안에 잡은 것이 1,800여 두름이나 된다고 했다.


오수가 청어 1,300여 두름을, 박춘양이 787 두름을 바쳤는데,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리기로 했다. 황득중은 202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가 술을 가지고 와서 군량 500석을 마련해놓았다고 했다.


본문 p.62에서 재인용(『난중일기』中)


난중일기와 선조실록에도 청어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원균이 전사한 후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그는 둔전을 설치하고 소금과 생선을 팔아 군량을 넉넉하게 비축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군량을 자급자족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난중일기에도 청어를 잡아 파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하늘이 도는 것인가, 땅이 도는 것인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단순히 생태계 관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철학, 천문학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고루 다루는 데에 있다. 이번 권에서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밤중의 복성재』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그 당시 새롭게 대두되던 '지전설'을 소개한다.

해당 목차에서는 코페르니쿠스와의 지동설을 언급하면서, 이와 궤를 같이 하는 홍대용과 김석문의 지전설을 아울러 다루고 있다. 지전설은 당시 조선에서 근대 태동기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이 꿈틀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우주론이었다. 정약전 역시 천체와 우주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혜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지전설을 증명하려고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는, 당대 실학자들이 고루한[각주:1] 성리학에 천착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우주와 인간과 윤리를 견고하게 붙들어맨 거대한 세계관을 깨뜨리는 데 역부족이었다. 하늘과 사람과 도덕이 하나로 통한다는 관념주의적 철학을 고수하던 기존 학자들에게, 천문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윤리 실천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던 것이다.


위치_선정의_달묘.CAT

생선 다루는 책인 걸 기가 막히게 알고 식빵 굽는 냥이. ㅋㅋㅋㅋ


  1. 여기서 '고루한'이라는 의미는, 성리학 전체에 대한 수식어가 아니라, 명분론으로 점철되어 교조적인 성격으로 변질된 조선 후기의 성리학 사조만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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