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추리]비밀 by G. K. 체스터튼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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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고해가 내밀한 범죄를 토해내는 순간

벌써 4권이라니! 오랜만에 내 취향에 (비교적)부합하는 추리소설을 만났는데 벌써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1,2,3권, 그리고 이번 4권까지 손에 쥐었을 때는, 새 책을 읽는다는 기쁨보다 남은 책이 얼마 없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제4권 『의심』에는 총 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브라운 신부의 비밀>, <보드리 경 실종사건>, <배우와 알리바이>, <최악의 범죄>, <마른 후작의 상주>, <판사의 거울>, <두 개의 수염>, <날아다니는 물고기의 노래>, <메루 산의 레드문>, <플랑보의 비밀> 순이다.

이번 『의심』은 액자소설 방식으로 엮여 있어서 첫 단편인 <브라운 신부의 비밀>과 마지막 단편 <플랑보의 비밀>은 출입문 역할만 할 정도로 짧다. 대신 나머지 작품들에 분량을 좀더 할애해서 트릭의 완성도를 높였다.


"모든 사람을 죽인 것이 바로 저이기 때문이지요."

여는 이야기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브라운 신부는 위와 같이 털어놓는다. 물론 은유적인 표현이긴 하나, 그는 범행 경위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사건을 계획해보고, 범죄자가 어떤 상태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되짚어가며 면밀하게 분석한다. 살인자의 두뇌로 사고하고, 살인자의 팔다리가 움직이듯 행동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그는 역설적이게도 '종교적 수행'이라 칭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보드리 경 실종사건>과 <배우와 알리바이>였다. 트릭은 전혀 다르지만, 등장인물의 이중적이고 비열한 속성 때문에 코난 도일의 <너도밤나무집>이 생각나기도 했다. 과장될 만큼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더 끔찍한 그림자를 가리기 위해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클리셰를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추리소설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기술은, 범죄의 합법화와 범죄자의 돋보임에 대해 확신하는 동시에 오해하게 만들 요소를 감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추리소설들이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 외에는 외관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내버려두는 느슨한 결말로 인해 실패한다. 우리는 그런 인물들을 무의식적인 제거 과정을 통해 추리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의혹을 품는 대상은 작품 속에서 의혹을 받지 않는 사람이다. ...(중략)... 추리소설은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게임에서 독자가 정말로 씨름해야 하는 상대는 범죄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이다.


본문 p.340 '추리소설 쓰는 법'에서 인용


상당수의 추리소설 작가들은 독자를 경악하게 하는 데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더 끔찍한 범죄 수법, 보다 놀라운 반전을 만드는 데에 골몰하면 할수록 작품의 내용은 작위적으로 연출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인용한 체스터튼의 의견을 거울 삼아 창작되는, 납득할만한 작품을 계속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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