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외투(단편선) by 고골리
by 첼시
<외투(단편선)>, N.V.고골리, Nikolai Vasilevich Gogol, 정은경 옮김
책 소개란에 러시아 문학에 최초로 사회적 요소를 부여했다는 설명이 있다. 대개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고 조금 더 확장해보면 막심 고리키, 안톤 체홉 등을 많이 입에 올린다. 나 역시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원류로 여기고 있었기에 고골리가 '최초'라는 설명이 다소 의아해 검색해보니 고골리가 그들보다 이미 한 세대 정도 앞서 있었다. 그의 작품 전반에 근현대적인 공기가 흐르고 있어 당연히 그가 더 최근 연대의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원조 큰형님이라는 걸 알게되니 왠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전신을 소름이 쭉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평범한 국밥집 주인 할아버지가 백 갑자 이상 내공을 쌓은 무림 고수라는 걸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것 같은 기분?)
내가 처음 고골리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외투'라는 작품의 일부였는데 안개 낀 듯 우울하면서도 거대한 세파의 흐름 속에 스러져가는 인간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져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푸슈킨보다는 소박하고 톨스토이보다는 호흡이 짧으나 미시적인 서민의 삶을 세세하게 어루만지는 연민이 느껴지는게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는 현진건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현진건보다는 유머러스한 여유가 느껴진다.
단편집은 <외투>,<코>,<광인 일기>,<네프스키 거리>,<마차>,<초상화> 순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코>.
<코>는 8등관 공무원인 코왈료프가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코'를 잃어버린 뒤 몇 주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이다. 코왈료프에게 8등관이라는 직위는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훈장 같은 의미인데, 사라졌다 나타난 그의 '코'는 무려 5등관이라는 고위 직급을 달고 종횡무진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소유한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는, 당연히 얼굴에 붙어있어야하는) 한낱 코가 그에게 위압감을 주고 감히 접근할 수 없도록 저 높은 곳에서 노닐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코>가 허무맹랑한 동화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계급과 권위에 얽매인 사회의 단면을 비꼬아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꽂이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차례차례 뽑아놓고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마침 다시 읽게 된 작품이 삽화가 들어간 고골리의 <코>였다. 거대한 코가 원래 임자인 8등관 코왈료프보다 훨씬 높은 5등관의 제복을 입고 근엄하게 마차를 타는 일러스트가 기괴하고 꿈 속을 거니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러시아 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내가 그렇다) 고골리의 작품으로 입문하는게 그 뒤로 펼쳐질 문학사조를 이해하는데 좋은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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