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금오신화 by 김시습(펭귄클래식 014)

2019.07.13 06:30

김시습 金時習(1435-1493)

호는 매월당(梅月堂).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나, 그 소문을 들은 세종이 직접 불러 시험하고 감탄해 상을 내리기도 했다. 1449년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삼년상을 치르고 조계산 송광사에 머물려, 거기에 석장을 쉬고 있던 준상인에게 불법(佛法)을 배웠다. 1453년 과거에 낙방 후 삼각산 중흥사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계유정난 소식에 책을 불사르고 방랑을 떠났다.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 사형당한 사육신의 시신을 그가 수습해 노량진에 묻었다는 기록이 『연려실기술』에 남아있다.

1465년 금오산에 들어가 금오산실을 복축하고 칠 년간 머물렀는데,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그 당시인 1470년 즈음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 본저 책날개에서 인용 및 2차 가공


한국 소설, 그 원류(源流)를 찾아서

소설[小說] : 사실이나 허구의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을 가미하여 산문체로 쓴 문학의 한 갈래

- 출처 : 다음 국어사전


한국 소설은 당대 문인들의 특성상 '한문 소설'―한글 창제 연도가 1443년이고,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는 그 뒤로 불과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4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 ―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른 문화적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문학사 역시 중국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초기의 작품들은 전개가 단편적인데다가, 설화적이고 교술적인 성격이 강하여 소설이라고 칭하기에는 불완전한 부분들이 있었다.

『금오신화』 역시 전기소설의 특징들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욕망에 충실히 따르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비극적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는 개인의 모습 등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민간 설화인 열녀 설화, 저포내기 설화 등을 소재로 활용해 중국과는 차별화되는 조선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천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붓놀림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은 총 다섯 편으로,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순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승과 저승, 혹은 이계를 넘나들며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초현실적인 세계를 다녀온 뒤 '죽음' 혹은 '실종'이라는 형태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김시습은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사건은 유교적 이상이 붕괴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시대의 부조리함을 비극적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는 자신의 신념을 작품 속에 새겨넣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절의를 지키면서도 당면한 현실에 좌절하고 결국 도피를 선택하는 결말은, 이러한 김시습의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 수많은 시를 등장시켜 예술성과 완성도를 더했다. 운문과 산문이 혼재하는 것은, 운율 중심으로 창작되었던 중세문학의 특징을 탈피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좀더 생동감있게 표현함으로써 미학적 요소를 첨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문, 문답체 등 다양한 양식을 구사해 작품에 활기를 더했다.


「서갑집후 書甲集後」[각주:1]


낮은 집 푸른 담요 아직 따뜻한데

들창에 매화 그림자 가득하고 달빛 밝아오네

기나긴 밤 등잔 돋우며 향 사르고 앉아서

세상에 없던 책을 한가로이 지었노라

옥당에서 붓 놀리는 일 이미 마음에 없어

깊은 밤 소나무 비치는 창 아래 단정히 앉아

차관과 동병 검은 책상에 정갈히 놓고

풍류 기화를 세세히 찾아보노라

- 본저 p.113에서 인용


  1. 『금오신화』발문에 해당하는 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