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추리]공포의 계곡 by 코난 도일

2020. 2.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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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려 하는 특유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힘겹게 더듬어 읽어내려갔던 책 몇 권은 들인 시간이 무색하게도 증발해버렸다.

말라붙은 자국도 찾을 수 없이 공중으로 날아간 책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익숙한 홈즈 시리즈를 다시 찾았다.

'설사 헤매고 비척거리더라도 플랫화이트와 비스킷 한 줌이 내 손을 잡고 끌어줄 거야.'

그런 생각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훌륭한 조련사 도일과 잘 훈련된 독자들

홈즈 시리즈 4권인 『공포의 계곡』. 도일은 1부를 본편으로 해서 사건과 범행 동기, 해결 과정 등을 보여주고, 2부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며 사건으로부터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추가적으로 소개하는 식의 전개를 즐겨 취한다. 추리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독자라면 다소 지루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구성의 변화가 내게는 그저 기꺼울 따름이다. 첫 단행본이었던 『주홍색 연구』에서 이미 접했던 구성이었기에 이번에도 마음 편히 그의 펜촉을 좇아갈 수 있었다.


1부의 첫머리는 홈즈가 최대의 라이벌인 모리어티 교수를 언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리어티 교수에 대해 세세하게 적는 것은 이후의 재미를 앗아갈 수 있어서 이 정도로만 소개한다. 다만 교수와 관련된 암호문을 해독하는 홈즈의 추론 경로, 아니 그것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도일의 방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편지를 보낸 측과 받는 측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만한 책을 토대로 암호문을 기입하고 해독하는 것은, 변수가 적었던 당대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기법이기도 하지만 나같은 범인(凡人)에게는 하나하나 새롭기만 하다.


편지의 분석 결과는 벌스톤에서의 끔찍한 살인을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허나 암호문을 해독한 직후 당도한 맥도널드 경관은 그 내용을 보고 경악하며 이미 지난밤 벌스톤 영주관의 더글라스 씨가 살해당했음을 알린다. 홈즈와 왓슨은 한발 늦게라도 범인을 추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글라스가 살해당한 서섹스로 향한다.


이상한 사건과 기묘한 사람들

사건의 희생자는 벌스톤 영주관의 주인 존 더글라스. 그는 총신을 잘라낸 산탄총에 얼굴을 집중적으로 포격당해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다. 실내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살해된 그의 시체가 사건 당시의 급작스러움을 대신 전하는 듯하다. 사라진 것은 오직 더글라스의 결혼 반지 하나 뿐인데다가 영주관을 둘러싼 해자를 빠져나갈 도개교도 이미 올려져있어 남의 눈을 피해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인이 몰래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어서 수수께끼는 일견 미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더글라스의 부인과 그의 벗 세실 바커는 짐짓 침통해보이는 태도를 취하면서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의 정황을 진술한다. 하지만 왓슨은 모두의 앞에서는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남들의 눈을 피해 즐거이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태도에서 언뜻 찜찜한 분위기를 읽어내고 의심을 품는다. 홈즈는 범인이 어떻게 도개교를 거치지 않고도 해자로 둘러싸인 영주관을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금전은 손대지 않은 채 결혼 반지만 빼낸 범인의 행동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의 요소들을 수상쩍게 여긴다.


범인을 소환하는 마법의 쥐덫


이후로 이어지는 2부 내용은 비하인드 스토리의 성격이기도 하고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한다.

뒷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듯해서 아쉬움이 있기는 하나, 더 큰 재미는 직접 읽을 독자들을 위해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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