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매거진B 57호 : 발뮤다(2017년 6월)
by 첼시
매거진<B>: 잡지의 특성을 걷어낸 잡지(였었던 잡지)
매거진<B> 시리즈에 대한 감상을 10권 이상 기록하면서 소소한 불평을 덧붙였는데 이번 발뮤다 편을 보면서 앞으로는 이 잡지를 더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물론 가지고 있는 잡지 기록은 이어서 올릴 예정―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매거진<B>의 장점이 많이 바랬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이하 '<B>'라고 표기).
<B>는 '광고 없이 한 호에 하나의 브랜드만을 다루는 잡지'라고 한다. 표지에 찍힌 B는 브랜드 Brand의 B, 그리고 균형 Balance의 B라고 한다. 여기서 <B>는 차별화를 꾀했다. 일반적인 잡지는 주제의 다양성과 시의성을 특징으로 한다. 무수한 광고 역시 따라붙는다. 당장 떠오르는 시사 잡지, 패션 잡지, 생활 잡지만 보아도 잡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B>는 광고도 없고, 한 호에 실리는 것은 브랜드 하나이니 잡다한 이슈를 소개하거나 현재 각광 받는 뉴스, 유행 등을 기민하게 다룰 수도 없다. 이를 다른 시각에서 말하면 잡지의 특성을 걷어낸 덕에 각 호는 독립적인 개체가 된다. 이것이 잡지보다는 단행본에 가까운, <B>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B>가 표방하는 '브랜드의 숨은 얘기부터 감성과 문화까지 다루는 잡지'라는 주제 의식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이는 <B>의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독자보다는 '팬'이라 칭하고 싶다). 단행본 같은 잡지를 만들고 싶다면 각 호 자체가 하나의 책으로 완결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내가 이전 몇몇 호에서 제기했던 불만과 같이 <B>가 이제는 더 이상 브랜드를 들여다보는 창의 역할로 기능하지 않고, 단순히 브랜드에 대한 미사여구를 곁들인 소개와 인터뷰에 치중해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B>의 편집 방향은 이제 바뀐 듯하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제 <B>를 살 이유를 잃어버렸다.
발뮤다 Balmuda : 디지털적 알고리즘으로 아날로그적 경험을 재현하는 브랜드
발뮤다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해준 매개체는 '토스터'였다. 한동안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를 앞세워 광고하는 것을 흥미롭게 봤고, 마치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단정한 외관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부가적 요소를 절제한 디자인은 브라운 BRAUN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를 연상케 했다.
편집장의 서문을 읽어보면 발뮤다가 추구하는 바를 조금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발뮤다가 추구하는 것은 기능을 넘어선 경험이다.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것, 토스터의 내부 온도를 단시간에 고온으로 올리는 것 등에 치중한다면,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꽃에 물을 주듯 가습기에 물을 붓는 행위, 숲 속에서 부는 바람의 스침, 여행지에서 갓 구운 빵을 맛볼 때의 기쁨 등을 사용자가 실행할 수 있도록 맞추어서 작동 방법과 디자인을 설계한다.
그래서 발뮤다의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유려하다. 주방 가전인 스팀 토스터의 둥글린 모서리,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 차분하고 단정한 색상 등은 말 그대로 '가구 같은 가전'의 존재를 실감케 한다. 또한 다이얼을 돌리는 간단한 동작을 통해 빵의 종류에 맞게 조절되는 스팀과 온도로 갓 구운 듯한 빵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용자의 만족도를 한층 높인다. 물론 바삭한 빵을 맛보는 것은 꼭 발뮤다가 아니어도 되고, 일반 오븐에서도 예열 후 스팀을 넣어 구우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거로움을 단순한 조작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감성이 느껴지는 디자인까지 갖춘 가전은 구매자를 충분히 매혹시킬 만하다.
준(準)장인정신과 스타트업의 한계
이번 <B>를 읽으면서 역시나 아쉬웠던 부분은 브랜드 소개와 인터뷰 부분이었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발뮤다에 대해 읽고 싶었는데 브랜드 설명은 현학적 수사가 가득한 문장들로 피로를 유발했고, 인터뷰는 발뮤다에 대한 칭송 쪽으로 쏠려 있었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팬레터가 아니라 분석과 평가였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해서 실망스러웠다.
발뮤다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 역시 의문이 생긴다. 대외적 이미지는 브라운, 애플, 다이슨처럼 실용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브랜드―발뮤다 측에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인 것처럼 형성되었는데 실제 발뮤다의 매출은 2020년 기준 126억엔이며 직원은 백몇십여명, 아직은 스타트업 수준의 기업이다. 전체 시장의 매출 중 해외 비중은 2020년 기준 23.75% 선이다. 현재 발뮤다가 누리는 인기가 일시적 유행에 편승한 것일지,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생긴 것일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매출액 및 매출 비중 출처 : https://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1024116.html)
발뮤다의 대표 테라오 겐과의 인터뷰에서도 소기업 특유의 긴장감―'영원한 벤처'―을 느낄 수 있었다. 발뮤다의 제품 기획과 제작 단계를 보면 기업의 생산 공정이라기보다는 공방의 작업 과정을 보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장인정신이지만 소비자가 그 장인정신에 치러야 할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 발뮤다가 대중화되는 데 벽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처럼 준장인정신을 가진 니치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그친다면 안주해도 상관 없겠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듭되는 혁신을 통해 하이엔드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굳히거나, 보급형 제품을 개발해 다각화된 각도로 시장에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https://fudd.tistory.com/tag/매거진B
서두에 언급했듯 앞으로 나는 매거진<B>를 더 구입할 계획이 없으나, 예전에 사두었던 과월호는 마저 기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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