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사랑손님과 어머니 by 주요섭(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1권)
by 첼시
주요섭,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연 <사랑손님과 어머니>다. 이 작품은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에서 두루 각색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작품이 너무 잘 알려진 나머지 '작가 주요섭'은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만큼 생소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손님 덕에 그가 대중적 명성을 획득한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그 소설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장벽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은 남녀간의 사랑이 주변의 이목과 보수적인 사회 풍조에 부딪혀 좌절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外). 그래서인지 세간의 평가는 그를 단순한 연애소설 작가로 폄하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 남녀의 비극적 애정을 다루었다고 해서 작품세계 전체를 통속적인 애정소설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러한 평가로 인해 그가 그릇된 인습에 희생당한 소외계층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곤궁하고 암담한 삶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어 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엮어낸 이번 선집은 기왕에 폄하되었던 주요섭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다만 소개되는 작품은 해방 전 소설에 한하는데 이는 주요섭에 대한 오해를 일시에 교정하기보다는 그를 심층적으로 재평가하기 위한 시발점 마련의 방편으로 여겨진다. 수록된 작품은 <추운 밤>, <인력거꾼>, <살인>, <첫사랑 값>, <개밥>, <사랑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의 마담>, <북소리 두둥둥>, <봉천역 식당>, <낙랑고분의 비밀> 순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대표작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여섯 살 난 처녀애 옥희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이 계집아이의 시선으로는 어른들, 즉,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갈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 당시 사회적·관습적 맥락을 고려하여 상황을 해석해야한다. 소설 속에서 옥희의 어머니는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욕을 한단다. …중략… 그리되면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라는 말을 하며 결국 자신의 욕망을 포기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옥희 가족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는 예배당과 기도 장면이 등장하고 기독교 교리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곳곳에서 읽힌다. 그러나 그것이 과부의 재가 금지라는 유교적 인습을 떨쳐내는데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이었던 작가 스스로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의 형 역시 성경 속 인물을 따서 요한이라 이름지었다. 주요한의 대표작인 <불놀이>는 한국 근대시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아네모네의 마담>은 남녀 간의 애정을 둘러썬 사회적 편견에 관한 단편이다. 이야기는 티룸 아네모네의 마담 영숙이 한달 전부터 티룸에 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신청해놓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남학생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남학생은 한 교수의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고 티룸에 와서 그녀가 좋아하는 미완성 교향곡을 들으며 마침 영숙의 옆에 걸려있던 그 교수 부인을 닮은 모나리자 그림으로 위안을 받고 있던 것이다. 이 사랑의 결말은 교수 부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남학생이 미완성 교향곡 음반을 깨뜨리며 소동을 벌이는 것으로 끝난다. 그 후 그의 친구가 영숙을 방문해 사죄하며 사정을 설명하는 다음 대목에서 작품의 주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더러운 기생 오입은 묵인하면서도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이 한 번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라는 다못 한 가지 이유하에 기생 오입보다도 더 나쁜 일처럼 타매하고 비방하는 그런 우스운 사회니까요."
작가는 그 친구의 입을 빌려 가부장적 인습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앞서 보았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와 마찬가지). 주요섭은 단순히 연애사만 다루는 통속 작가가 아니라 남성 중심적 결혼 제도를 통렬히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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