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교양-일반]시가 Cigare(창해ABC북 040)

by 첼시

반응형

 


시가

저자
에리크 데쇼트 지음
출판사
창해(새우와 고래) | 2001-10-3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창해ABC북 시리즈는 이미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네임밸류를 인정받...
가격비교

 

 

"시가는 고통을 잠재우고, 무료함을 달래주며,

한가한 시간을 더욱 편하고 마음 가볍게 만들어주고,

고독한 순간을 수많은 우아한 이미지로 가득 채운다."

- 조르주 상드

 시가에 대해 예찬하는 조르주 상드의 글에 '시가' 대신 다른 어떤 것을 넣어도 다 설득력 있는 말이 될 것이다. 와인, 음악, 책, 영화, 여행, 게임 등... 모든 OO 애호가들은 그 나름으로 상드의 글에 공감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가는 특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누구나 쉽게 향유하지 않는 기호품이기에(실제로 비용이나 접근성 등의 장벽이 상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낭만적이고 멋스러운 취미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악당의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권위와 오만함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창해ABC의 <시가 Cigare>편은 아마 고등학교 때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구입해 읽으면서 정말 기뻤다. 독서만이 주는 즐거움, 책읽기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이 종종 오는데 이 책도 그러했다. 여고생이 담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한다는게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난 어떤 사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한 유형의 서적을 정말 사랑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시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시가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해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배운다는 것이 참 즐겁다. 창해ABC는 그런 점에서 참 괜찮은 책인데... 절판이라니!!! 두고두고 아쉽다. 창해ABC의 재발간을 기원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감상문을 남길 생각이다.

 

 

담뱃잎 수확부터 시가 포장까지

 담배의 원산지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아메리카이다. 담배는 유럽인들에 의해 15세기 경 쿠바에서 발견된 이래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지금과 같이 상권엽, 중권엽, 전충엽 세가지로 구성된 형태의 시가 '푸로'는 1731년 스페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서인도 제도 및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인디언들은 훨씬 이전부터 시가를 피웠는데, 당시 이 지역에 파견되었던 유럽 선원들이 이를 보고 유럽 각국에 시가를 전파했다.

 

 시가는 기계 또는 수공업으로 생산되는데 여기서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시가 제조를 설명하고자 한다. 시가의 대표적 산지인 쿠바에서는 1~3월에 담뱃잎을 따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수확 후 선별된 담뱃잎은 건조와 3단계에 이르는 발효를 거친다. 이 과정은 보통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된다. 발효를 마친 후에는 시가의 맛을 결정하기 위한 담뱃잎 배합을 하고, 이파리 중앙의 잎맥을 떼어낸다. 잎맥은 너무 두껍고 단단해서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담배공장의 직공들은 잎맥을 떼어내는 동시에 담뱃잎을 둘로 나누는데, 나눠진 이파리는 시가를 말 때 사용하고, 떼어낸 잎맥은 담배 농장에서 비료로 사용한다. 흔히들 잎맥떼기 작업을 하는 직공들이 소란스럽다는 평판을 듣는데, 메리메의 소설 주인공 '카르멘' 역시 담배공장의 여직공으로, 작품 속에서 자유분방하면서 드센 모습으로 묘사된다.

 

 시가는 외견상 머리, 몸통, 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말려있는 순으로 보면 밖에서 안으로 상권엽, 중권엽, 전충엽으로 이루어져있다. 머리 부분은 흡연자들이 절단한 후 입에 무는 곳이다.

 시가의 밖을 둘러싼 상권엽은 품질이 뛰어나고 질기면서도 연한 반쪽짜리 담뱃잎이며, 나선형으로 말려있다. 상권엽 바로 안쪽의 중권엽은 겹쳐놓은 반쪽짜리 담뱃잎 두장이다. 시가를 단단하게 말기 위해서 중권엽은 말 때는 두 장의 담뱃잎을 반대 방향으로 포개놓고 만다. 전충엽은 담배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요소이며, 특성이 다른 세 장의 담뱃잎으로 이루어져있다.

 

시가에 불을 붙이는 순간

 연기와 재로 화할 수 밖에 없는 시가의 속성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순간적인 것과 즐거움을 신봉하는 탐미주의자들이 시가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830년대부터 아바나 시가는 영국 댄디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이 우아한 기호품을 마음껏 향유하기 위해 곳곳에서 시가 흡연을 위한 '시가 디반(cigar divan)'이 등장하는 한편, 멋스럽게 시가를 피울 수 있는 시가파이프도 인기를 끌었다. 스탕달은 이 철학적이기까지 한 기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시가를 피우는 것처럼 글을 쓴다."

 

"라라나가 한 대는 평화를 가져다준다.

헨리 클레이 한 대와 함께 마음의 고요가 찾아온다.

 여자는 그저 여자일 뿐이다.

 하지만 좋은 시가 한 대는 흡연자에게 휴식을 가져다준다." 

-러디어드 키플링

 19세기 문학 작품에는 담배, 특히 시가의 등장이 잦다. 이는 당시 문학계의 주류였던 부르주아 계층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었던 발자크는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멋쟁이'들에게 시가를 물렸다. 여자를 아주 좋아했던 프랑스의 낭만파 히인 뮈세 역시도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고 단언했다. <정글북>의 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러디어드 키플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의 글처럼 '여성은 여성일 뿐이나, 시가는 연기이다.'라고 표현했다.

 문학 작품에서 시가에 대한 애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프랑스의 쟝 지오노이다. 그는 <지붕 위의 기병>이라는 작품의 주인공 앙젤로의 입을 빌려 '총을 장전하는 순간에도 시가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라고 말한다. 시가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앙젤로를 콜레라와 총·칼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다. 문학 작품 속에서 시가에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강하게 묘사된 예는 찾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시가는 권력을 상징한다. 세이타에서 발행한 <담배와 흡연자 백과사전>을 보면 시가를 피운다는 것은 영화적 언어로 '나는 강하거나 교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를 역이용해 정치적인 풍자 영화에서는 시가를 거만함, 또는 거만함에 대한 비웃음을 표현하는데 쓴다. 특히 미국 영화 가운데 시가가 부정적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많아서 시가 제조업체들이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시가의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시켜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비록 시가가 부(富)나 그 부에서 비롯된 거만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나, 시가를 애호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여전하다. 역사 속의 대표적인 시가 애호가로는 말라르메, 보들레르, 리스트를 들 수 있다. 또한 레닌이나 처칠 같은 정치인, 오손 웰스 같은 영화스타 역시 시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시가를 피우는 여성은, 같은 취미를 가진 남성보다 더 가십거리와 지탄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이로 인해 시가를 피우는 여성들은 드물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유분방한 여성들이 종종 시가를 피웠다. 그러한 여성들의 대부분은 시가를 피웠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미 다른 이유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여성이었다. 대표적인 여성 시가 애호가는 조르주 상드였다. 본문 상단에 상드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시가를 즐겨 피웠으며, 그로 인해 셀 수 없는 풍자화와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녀 외에도 화가 로자르 보뇌르와 메테르니히 공작부인 역시 열렬한 시가 애호가였다. 드물게 그녀들을 흉내내 시가를 피우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남성들만큼 시가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쿠바, 그리고 아바나 시가

 시가 하면 쿠바, 쿠바 하면 시가라고 할만큼 쿠바산 시가의 명성은 높다. 쿠바산 시가는 아바나 시가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강한 연기와 풍부한 맛으로 유명하다. 쿠바의 기후와 토양 자체가 뛰어난 품질의 담뱃잎을 생산하는데 안성맞춤이다보니, 쿠바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온두라스와 산토도밍고 여러 지역에서 생산한 시가는, 훌륭한 재배 기술과 배합법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빈약한 맛이 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아바나 시가도 잠시 주춤했던 시절이 있는데, 피델 카스트로가 권력을 장악한 직후였다. 그는 권력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아바나 시가에서 자본주의의 잔재인 상표를 없애고 대신 '인민의 시가'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쿠바를 세계 곳곳에 알려지게 했던 시가의 상표명이 사라지자 쿠바 시가는 즉시 파멸로 내달았다. 낯선 상표명으로 인해 쿠바 외의 지역에서는 아바나 시가가 전혀 판매되지 않아 수출이 완전히 중단되었던 것이다. 실리주의자였던 카스트로는 곧 예전의 상표를 다시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그 덕분에 아바나 시가는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블로그의 정보

Chelsea Simpson

첼시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