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예술]상징주의와 아르누보 Le Symbolisme et l'Art Nouveau(창해ABC북 045)
by 첼시
위의 책 정보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책 정보 첨부는 작년 가을에 없어진 기능이다) 이번 창해ABC북 <상징주의와 아르누보>편은 독후감을 쓰려고 오래전에 맘 먹었다가 보류해두었던 책이다. 처음 샀을 때, 몇년 뒤에 한번, 작년 여름에 또, 기억나는 것만 세번 정도는 읽었는데도 내용의 큰 줄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뭉뚱그려져 경계가 희미한 덩어리인 상태로는 인지할 수 있으나, 체계적인 구조라든지, 상하위 개념의 관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상징주의가 단순히 한두 줄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실체를 지닌 것이 아니고, 기존의 실증주의에서 비롯된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등과 어떻게 대립하는지도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감상문을 남기기 더 어려웠다. 아르누보 역시 나에게 깊은 번민을 안겨주었다. 다섯번, 여섯번, 아니 열번을 읽게 되는 그 때에는 좀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오늘의 내가 뒷날의 나에게 지혜를 빌려줄 수 있도록―부족한 독후감을 적는다.
상징주의의 일차적 정의는 기존의 사상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상징주의의 예술가들은 실증주의 및 물질주의가 팽배하던 근대 세계를 거부하며 염세주의를 표방했다. 이러한 염세주의가 구체적으로 발현된 은둔생활은 일종의 지적 면모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고, 이후 나르시시즘과 결합하면서 예술인들의 현실도피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세상을 거부하는 행위는 소극적인 도피 뿐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 행위로도 이어졌다. 1890년대 프랑스에서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이에 동조하는 예술가들이 늘어났고, 벨기에에서는 사회주의 운동과 함께 벨기에 노동당이 탄생했다.
이처럼 복잡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상징주의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상징주의를 특정한 유파로 정의하기보다는 일종의 '흐름' 내지는 '경향'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좀더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가 말라르메 역시 "나는 유파라면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상징주의자들은 극도의 개인주의자였기에 그들을 한 범주로 묶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 탐구와 형이상학적 삶을 중시했다는 것, 그리고 모호한 형식을 이용한 암시적 기법을 즐겨 썼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정신분석학이 태동하고 있었고 예술가들은 이와 관련된 영감을 얻어 성적 욕망과 남녀의 대립, 잠재된 영혼의 본질 등을 탐구했다. 화가 르동은 창작의 과정을 "무의식에 온순하게 복종하는 일"로 정의하였다.
상징주의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꿈꾸었기에 예술적 제재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주로 택했는데, 거시적으로는 전설과 신화로부터 모티브를 취했고, 미시적으로는 인간의 내면, 즉,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본질, 그리고 성과 죽음에 대해 파헤쳤다. 전설과 신화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 덕분에 대중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며,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운동과 맞물려 각국 지식인들의 민족혼 부흥 및 고유 언어와 문화유산 보호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상징주의가 발달하던 시기에는 문학과 미술 분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친교 목적을 넘어 각 예술 장르의 융합으로 이어졌다. 상징주의와 데카당파 문인들은 미술 작품의 주제를 차용하거나 화가들의 일상을 문학 작품으로 제작하기도 했고, 상징주의 화가들은 문인들과 유사한 주제의 미술 작품을 그려내거나 문학 작품에 삽화를 담당하기도 했다. 더불어 문학 내의 장르 또한 연극, 소설, 콩트 등이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아르누보(Art Nouveau)는 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용어는 지크프리트 빙이 1895년 프로방스 가에 갤러리를 열면서 널리 알려졌다. 아르누보는 기존의 합리적이고 명확한 역사주의적 양식(신고딕 양식, 신르네상스 양식 등)을 탈피해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아르누보하면 대개 구불구불한 덩굴 같은 곡선의 조형미를 연상하게 되는데 보다 구체적인 분류로는 트스후디 매센의 네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그는 첫째, 프랑스와 벨기에의 주류인 상징적이고 역학적인 추상적 양식, 둘째, 낭시파의 유기체를 강조한 꽃무늬 양식, 셋째, 글래스고 그룹의 상징적 경향을 지닌 선적이고 평면적인 양식, 마지막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구성적이고 기하학적인 양식으로 구분했다.
아르누보에 대해 얘기할 때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를 빼놓고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체코 출신의 화가로 1894년 연극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주문한 <지스몬다>의 포스터가 성공을 거두면서 파리 예술계의 전면에 떠올랐다. 무하는 아라베스크 문양(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하여 이슬람 공예가들에 의해 정형화된 장식 문양으로 덩굴, 잎사귀의 구부러진 무늬, 또는 그러한 형태를 추상화시킨 장식적인 선형이 주가 된다) 표현에 능했다. 그는 "사람의 눈은 직선보다 곡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며, 아라베스크 문양을 토대로 작품 내에 빈 공간이 없도록 가득 채우는 기법으로 창작하길 즐겨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책장을 아예 덮게 되면 그 책에 '체했다'고 말한다. 한번 '체한' 책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씩 펼쳐보지 않게 되는데 이번 창해ABC북 역시 그러했다. 책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것을 내 머릿속에서 곱씹어 다시금 재구성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어려웠다(어려워서 재구성을 못했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 자체가 굉장히 방대했기에 단순히 문학과 그림과 음악 작품을 감상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끝내기에는 부족했다(단순한 감상자 입장일 때는 정말 기쁘게 즐겼던 상징주의 작품들인데!).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해도 동반해야 하는 주제이기에 아직도 전체적인 흐름을 잡지 못했고, 감상문 역시 지엽적인 주제만 훑고 끝냈다. 다섯번째로 이 책을 읽을 때는 좀더 풍부한 배경지식과 한층 더 성장한 이해력으로 모든 내용을 흡수하고 싶다.
□ 미술을 주제로 한 다른 창해ABC북 시리즈
반 고흐 편은 워낙 좋아하는 화가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2015/05/05 - [책] - [교양]반 고흐 Van Gogh(창해ABC북 001)
그러고보니 들라크루아 편을 읽을 때도 비슷한 감상이었다(프랑스 낭만주의가 같이 쏟아져 들어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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