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레베카 by 대프니 듀 모리에
by 첼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유튜브에서 본 한 편의 동영상이었다. 당시 보았던 것은 옥주현 배우와 김보경 배우가 함께 공연한 뮤지컬 <레베카>의 한 장면이었는데, 영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지난달 <엘리자벳>을 보러 다녀오기도 했었다. 내가 보았던 부분은 <레베카 Act 2>라는 곡명을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두 배우의 호연과 가창력이 돋보이는 영상이었다. 히치콕 감독의 작품 중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다가 영화와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소설, 그 소설이 1938년 출간된 이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서스펜스 문학의 걸작이라길래,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져 책까지 구입하게 됐다.
<레베카>의 내용은 주인공 '나'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30쪽 정도 읽었을 때, '그러고보니 주인공 이름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앞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뒤에 알게됐지만 <레베카>는 주인공의 이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다.
소설은 '나'의 회상으로 시작되는데, 초반부는 여느 할리퀸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반 호퍼 부인이라는 부유하고 나이든 여인의 시중을 드는 가난하고 어린 아가씨이다. '나'는 반 호퍼 부인을 따라 여행하던 어느 날 몬테카를로의 호텔에서 멋진 귀족 맥시밀리언 드 윈터(이하 '맥심')를 만나게 되고, 반 호퍼 부인의 눈을 피해 꿈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반 호퍼 부인이 몬테카를로를 떠나면서 '나'는 맥심과의 이별을 준비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나'에게 맨덜리로 함께 가자고 청혼한다.
소설 속 '나'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단순히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씁쓸하고 우울하고 근심이 가득찬 절망의 이미지를 수없이 떠올리기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과거와 미래를 뇌까리는 '나'의 모습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서술 기법이 독자의 관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느낌이다. 인간의 불편한 심리, 은밀하게 숨겨진 내적 갈등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기분이어서 약간의 찝찝함과 동시에 호기심을 채우는 속물이 된 기분이다.
왕자님을 만난 신데렐라처럼 '나'는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이 된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축복받는 새색시의 생활이 아니라 죽은 전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맨덜리의 음습하고 암울한 공기였다. 맥심의 전부인 레베카가 보트를 타다 바다에 빠져 죽는 사고를 겪은 뒤 1년도 되지 않아 맥심과 '나'가 재혼한 것에 대해 모두가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집안 살림 전체를 손에 쥐고 있는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자리를 대신한 '나'에게 냉랭하게 대하고, 믿었던 남편 맥심마저 레베카를 잊지 못하는 듯하다.
'나'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은 무도회를 앞두고 구체적인 갈등의 폭발로 드러난다. 무도회의 드레스를 고민하던 '나'에게 댄버스 부인은 그 동안의 뻣뻣한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저택에 걸린 초상화를 모델로 해보라고 조언한다. 완성된 드레스를 선보이던 순간 '나'가 맞닥뜨린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나 칭송이 아닌, 경악에 차 하얗게 질린 맥심의 얼굴이었다. 댄버스 부인이 고의적으로 '나'에게 레베카와 동일한 드레스를 입도록 종용한 것이었다.
'나'는 결국 맨덜리 저택에서 레베카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어리고 촌스럽고 서투른 자신과는 달리, 레베카는 우아하고 매력적이고 사랑받는 여인이기에, 모두가 레베카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의 내적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댄버스 부인은 한술 더 떠 맨덜리의 안주인이자 드 윈터 부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레베카이니 '나'에게 당장 뛰어내려 자살이라도 하라고 속삭인다. '나'는 언제까지고 레베카를 떨쳐버릴 수 없음에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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