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추리]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by 조르주 심농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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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시리즈 : 추리물이 아닌 수사일지

 매그레 시리즈를 차례차례 읽어가면서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수사 과정을 기록한 일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홈즈나 포와로 같은 명탐정은 없는 것이다. 나는 범인(凡人)보다는 좀더 낫지만 그렇다고 초인(超人)은 아닌 매그레의 뒤를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머리를 굴린다. 그는 여타의 탐정들처럼 사건의 전말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줄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지난 세 권도 그러했지만 이번 편은 특히 모호한 서술이 두드러졌다. 안개, 아니 진흙 구덩이 속을 더듬어 뭔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읽기야 두 달도 더 전에 읽었다만, 뭔가 명쾌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라 프로비당스호의 카르멘과 돈 호세

 내용을 축약해서 쓰려다가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앞서 읽었던 매그레 시리즈도 그러했지만 이번 편은 특히나 더 피로하게 느껴졌다. 살해당한 이와 살해한 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인물을 구분한다면 죽은 이는 셀린 모르네이고, 그녀를 죽인 이는 장 다르샹보다. 이게 ㅅㅍㅇㄹ가 될 수 없는게 이미 제목부터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라고 적고 있다. 셀린과 장은 과거에 부부였다. 그런데 의사였던 장이 숙모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강제 노동 15년형을 받게 되면서 셀린은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고통스러운 도형장에서의 시간을 견딘 후, 장은 마부가 되어 전부인 셀린과 재회한다. 장은 그녀가 자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셀린은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장은 그녀를 교살하고 만다. 장이 숙모의 재산을 노려 살해했던 것이(혐의가 아니라 정말 독살했던 것) 셀린의 사치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가 왜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아주 약간).

 속물적이면서 남자를 홀리는 매력이 넘치고 제멋대로인 셀린의 모습을 보니 카르멘이 떠올랐고, 그러한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지 못해 결국 그녀와 자신 모두 파멸로 몰아넣는 장에게서는 돈 호세를 보았다. 팜므 파탈이 남자를 비극적 운명에 처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알퐁스 도데의 <아를의 여인>이 생각나기도 했고, 셀린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장을 떠나려고 하는 부분은 나도향의 <물레방아>를 연상시켰다.

 

미진한 독자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기다리노매 

 이번 편을 읽으면서 피로도가 심했다고 적었는데 동시에 정말 맥이 빠졌다. 범인을 추적하는 매그레의 수사 과정은 닦지 않은 거울처럼 뿌옇고 계속 변죽만 울리는 식이었는데, 막상 범인을 특정하고 나니 고전소설의 이야기꾼처럼 매그레가 '너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녀를 죽인거지?' 이렇게 끝내버리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생명은 범인이 정교하게 짜놓은 트릭을 탐정이 어떻게 풀어가느냐인데(그게 바로 '추리'다), 이번 편에서는 추리의 과정은 없다시피 하고, 매그레가 미동도 없는 장과 독대하여 진상을 캐묻는게 다였다. 그동안 매그레가 진범을 놓아주거나 모른체 눈감아주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했지만, 이번 편은 내용을 너무 안이하게 구성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칸막이로 가려놓았던 내용을 막판에 '으아아아아!! 범인은 얘다!!'라는 식으로 판을 엎어버리다니...ㅠ 인간미는 없지만 친절하고 익숙한 추리를 선보였던 홈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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