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현산어보를 찾아서① :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 by 이태원
by 첼시
<현산어보를 찾아서>.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건 대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보통 대여해서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직접 구입하는데, 학생이다보니 권당 2만원이 넘는 <현산어보를 찾아서> 시리즈를 사기에는 내 주머니 사정이 힘겨울 때였다. 전권을 구입하면 십만원이 넘는데.. 으아니 햄보칼쑤 업써! 그 때 1권 사고, 그 다음달에 2권 사고, 이런 뒤에 3,4,5권은 미루고 있다가 취업하면서 비로소 나머지 시리즈도 장만할 수 있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그만큼 내 마음에 들었고 갖고 싶었던 책이다.
정약전 하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형이라는 사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는 순조 1년(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와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신지도, 우이도, 흑산도를 떠돌며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런 그가 흑산도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남긴 서적이 바로 <현산어보(玆山魚譜)>다. 정약전은 이 책에서 물고기뿐만 아니라 갯지렁이, 말미잘, 갈매기, 미역 등 총 226개의 표제 항목을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생물 이름만 나열하거나 중국 문헌의 기록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생물을 직접 채집·해부·관찰한 결과를 상세하게 적고, 각각 생물들의 식용 여부, 요리법, 양식법 등 실용적인 활용법까지 언급하였다.
종래에는 玆山魚譜를 '자산어보'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산어보를 찾아서>에서는 玆山魚譜를 '현산어보'로 부를 것을 주장하며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정약용과 그의 제자 이청과도 친밀한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암이 그의 저서 <유암총서柳菴叢書)>에서 흑산도를 현주(玄洲)라고 칭하는 부분이 있다. 유암이 흑산을 현주라고 일컫는 것은 정약용이 흑산을 玆山이라 부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토대로 추정하건대, 다산의 형이었던 정약전 역시 자신이 머무르던 흑산도를 현산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玆의 일반적인 음독은 '자'이지만 검다는 의미로 玆를 쓸 때는 '검을 현玄' 두 개를 나란히 쓴 것이기 때문에 '현'이라고 읽어야한다는 논리도 <현산어보(玆山魚譜)>로 부르자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현산어보>에서 다루는 내용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세밀한 삽화,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원전에 실린 해양생물들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 이태원은 흑산도로 직접 내려가 연근해안의 해양생물을 직접 관찰하고 그 특성을 서술한다. 이 책은 총 다섯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첫 권은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이라는 부제 하에 흑산도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책의 분류는 교양과학으로 되어있지만 정약전의 유배 생활에 대한 내용은 역사책을 읽는 것 같고, 저자가 흑산도를 오가는 부분은 여행기를 보는 것 같으며, 흑산도의 해양생물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명칭에 대한 탐구를 하는 걸 보면 언어학 책을 읽는 것 같다.
이 책의 절반은 문헌과 역사적 자료에 대한 고증 및 분석이고, 나머지 절반은 흑산도 주민을 대상으로 한 탐문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의 해양생물을 탐구하면서 정식 명칭 외에도 속칭을 병기했는데, 이러한 속칭이 당대 흑산도에서 사용하던 생물 명칭의 방언이었으며, 이는 곧 현재 생물 명칭의 어원과 변천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의 학공치는 현산어보에 침어(鍼魚), 속명은 공치어(孔峙魚)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다.
정약전은 학공치에 대해 '몸은 가늘고 길어서 뱀과 같다. 아랫부리는 3~4치 정도인데 침과 같이 가늘다. 윗부리는 제비부리와 같다. 빛깔은 흰색 바탕에 푸른 기가 있다. 맛은 달고 산뜻하다.'고 묘사한다. 이 책에서는 세밀화를 그려넣어 해양생물의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약전이 비유한 바와 같이 제비부리가 학공치의 주둥이와 어떻게 유사한지 사진으로 넣고, 학공치와 비슷한 이름의 꽁치는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지 자세하게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소재만 본다면 자연도감인데, 그것을 정약전이라는 인물의 생애, 그리고 역사와 함께 풀어나가는 저자의 솜씨가 훌륭하다. 책장을 넘기고 있다보면 내가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흑산도 바닷가에 나가서 갯지렁이를 채집하고 소라껍데기를 주워서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굉장히 아끼는 책인데 막상 감상문을 쓰려니 '우와, 좋다!'라는 생각 말고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니... 내 사고력이 딱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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