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반]이방인 by 알베르 카뮈
by 첼시
한동안 책을 읽으면서도 크게 즐겁지 않았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말고, 새로운 책을 읽을 때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두어 페이지 읽은 뒤 책을 덮고,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도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이방인>을 구입했다. 딱히 이 책 자체가 목적도 아니었고 여러 권을 사는 김에 이것저것 끼워넣다가 집어넣은, 제목 그대로 다른 책들 사이에 이방인처럼 끼어있던 책 한 권.
알베르 카뮈. 그는 알제리 몽도비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하지만 총명했던 덕에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대학 진학의 기회도 얻는다. 알제 대학 철학과 시절 창작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수가 되려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는 대신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로 활동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1957년에는 프랑스 작가 중 최연소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삼년 후인 1960년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이방인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뫼르소는 알제의 선박 중개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소설은 1부와 2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의 첫머리는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양로원으로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지만, 바로 그 주말에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와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하는 등 데이트를 즐긴다. 또한 그는 같은 아파트의 레몽과 친해져서, 레몽이 그의 변심한 애인에게 경고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대필을 해준다. 며칠 뒤 뫼르소는 레몽, 마리와 함께 해변으로 놀러갔다가 레몽 옛 애인의 오빠를 마주치게 된다. 싸움이 벌어져 레몽이 칼에 찔리고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뫼르소가 잠시 걷던 중,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칼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2부에서는 뫼르소가 살인으로 인해 사형을 언도 받는 과정이 주가 된다. 검사 측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 당일에 무심한 태도를 보였던 점, 장례를 치른 그 주말에 마리와 데이트를 즐기고, 아랍 여인에게 경고성의 편지를 날렸던 점(레몽의 요청으로 대필했던) 등을 내세워서, 뫼르소가 아무런 가책 없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음을 주장한다.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나니,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잔혹하고 냉정한 살인범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작품 말미에는 신부가 사형수를 위한 기도를 하려고 뫼르소를 찾아온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꾸밈도,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던 뫼르소가 마침내 폭발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그는 형이상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신부에게 분노하며 허울 뿐인 기도를 격렬하게 거부하고, 다가올 사형 집행일을 기다린다.
- 본문 p.198 <작품 해설>에서 인용
김화영 역자의 작품 해설이 너무도 와닿아서 직접 인용하였다. <이방인>을 읽는 내내 내 등골을 찌르르하게 관통하던 인상을 매우 정확하게 정리한 글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보이는 반응과 장례식에서 취한 태도, 그 이후 마리와의 데이트까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하기에는 다소 의아한 면면이 보인다. 다만 순간순간 그가 느끼는 불편함―어머니의 죽음으로 느끼는 일종의 죄의식, 살라마노 영감의 개가 실종된 이후 뫼르소가 어머니를 떠올리는 대목 등―을 보며, 그가 무의식중에 어머니의 죽음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사형 언도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진실을 꾸며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변호사는 심지어 그에게 '어머니의 장례식 당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느냐'고 그의 감정을 만들어서 제시하기까지 한다. 뫼르소가 다른 사람들처럼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거나, 죄책감이 뒤섞인 고해성사를 하지 않자, 재판정의 모든 이는 그를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단정짓는다.
뫼르소의 내면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이 스스로의 얘기를 무심한 듯 담담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서술기법 덕에,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꾸며서 말하는 일이 없는 뫼르소의 심리적 변화를 보다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카뮈의 능수능란한 문장 구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20대에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지... 난 거장들과 겨룰 재주도 없는데 왜 그들을 질투하는가...ㅋㅋ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전이라는 멍에가 앞서 <이방인>이 내게는 너무 버겁게 느껴졌었다. '부조리에 항거하는 인간'을 다룬 작품이라니, 감히 내가 읽을 수 있을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여러번 제기했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마치 빨대로 음료를 빨아들이듯이 멈추지 않고 글자 위를 시원스레 내달렸다. 짧은 문장이 가벼운 파편처럼 늘어놓이고 이내 사라진다. 뫼르소가 이끄는 대로,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나는 잰 걸음으로 부지런히 뒤를 쫓는다. 번역도 본문의 뉘앙스를 최대한 원서에 가깝게 살린 듯하고, 로제 키요의 비평과 김화영 역자의 작품 해설까지 버릴게 없는 책이다. 아니, 해설까지 꼭 다 읽어야하는, 가치있는 책이다. 이날 밤은 가벼운 흥분에 취해서 잠자리에 들었다.
세계 고전을 다시 사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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