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lsea Simpson

[소설-SF]마션 by 앤디 위어

by 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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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마션> 열풍이 불었는데 난 영화를 원래 잘 안 보는 편이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만...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장르가 sci fi라고 하니 흥미가 생겼고 영화를 보고 온 단련님도 책이 재밌을거라고 말씀하셔서 드디어 <마션>을 구입했다. 한동안 뜸했던 내 SF 지분을 늘려줄 때도 됐고!

주요 내용에 대한 언급이 많으니 <마션>의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아래 글을 읽지 말아주세요.

 

  

저자인 앤디 위어의 이력을 살펴보다가 둘째줄에서 웃고 말았다. 여덟살 때 이미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같은 거장의 걸출한 작품을 탐독했다니 ㅋㅋㅋ 내가 전래동화를 읽고 있을 때 이 양반은 벌써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구나.

 

THE MARTIAN = 화성에 남겨진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기

이 소설을 딱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위에 적은 소제목과 같이 '화성에 남겨진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생각나서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다니엘 디포를 검색하니 '대니얼 디포'라고 나오는군. 요새는 원래 발음을 존중해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할로윈을 핼러윈으로 쓴다든지... 적응 안됨

 SF라고 하면 좀 부담스럽지만 무인도, 아니 무인성에 홀로 남은 과학자의 고군분투 생존기라고 하면 한층 쉽게 다가오지 않는가? 지구와 달리 숨쉴 공기도, 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화성에서 식물학자 겸 엔지니어인 마크 와트니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을 차근차근 마련해나간다. 책 뒷표지에서는 와트니가 생존을 위해 수행한 활동을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설명한다. 크루소와 와트니의 공통점은 둘다 고립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루소의 가장 큰 적이 외로움―식인종 원주민과 맹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큰 적은 아닌 것 같고―이라면 와트니의 가장 큰 적은 그가 처한 환경, 화성 그 자체다. 그의 식량은 제한돼 있고 그게 다 떨어지면 그는 영락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마션의 위치 : sci fi로 가는 길 그 어디 쯤

(그가 시한부 생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독자들이 와트니의 운명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크지 않다. 이미 책 소개에서부터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라고 다 알려주고 있으니까. 다만 그가 화성을 탈출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그 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 되는 것이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고(와트니→생존) 작품의 분량은 번역본 기준으로 598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이다. 결말을 이미 알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지만 그만큼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흐트러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앤디 위어는 몇 가지 장치를 활용해 나름대로 영리하게 풀어나간다.

 우선 그는 두 가지 시점을 이용해 내용을 전개한다. 주인공 마트니가 화성 일지를 기록할 때는 와트니의 1인칭 시점으로, 지구와 헤르메스 호가 배경이 되는 내용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지구와 헤르메스 호의 일은 당연히 3인칭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고(양쪽 다 오가면서 1인칭으로 직접 서술할 수 있는 인물은 없으니까), 와트니가 하루하루 살아남는 과정은 그 자신의 입을 빌려 설명하게끔 함으로써 독자가 와트니의 상황에 좀더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어는 위 사진처럼 와트니가 중요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 역시 독자들이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관망할 수 있도록 3인칭으로 서술한다. 위어가 어떤 의도로 이 대목을 서술했는지는 알겠지만 묘하게... 정말 묘하게 허술한 느낌이어서 좀 아쉬웠다. 이 소설 자체가 그리 어렵게 쓰인건 아니지만 이 부분은 좀더 치밀한 문장으로 구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장면은 와트니가 화성에서의 불확실한 생활을 떨쳐버리고 마침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크나큰 발판을 디디게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중요도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게 처리한 것 같다.

 

<마션>의 또다른 장점은 진입장벽을 대폭 낮춰서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와트니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와중에도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그것을 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각각의 단계를 상세하게 일지로 남겨서(설명충 와트니...) 중간에 논리의 비약이 일어나지 않고 이해하기도 쉽다. 게다가 조금만 용어가 복잡해지거나 하면 '$#%&*&^!@#라는 단위가 있는데 이걸 X라고 칭하겠다.'는 식으로 간소화해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낯설고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쉽게 그려볼 수 있게끔 도와준다. 번역본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행간도 널찍해서 600페이지가 금방 넘어갔다. 고전적인 SF소설과 비교했을 때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을 꼽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흥미롭게 읽기는 했으나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번 읽고 책을 덮기까지는 재밌었는데 여러번 읽어서 두고두고 곱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화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영화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책 속에 등장하는 와트니의 생명연장활동을 어떻게 재현했는지 그게 궁금하다. 그리고 마크 와트니라는 주인공이 웬만한 사고는 사고도 아닌 것처럼 돌발상황이 일어나도 잘 대처하기에 '뭐야? 철인이냐?'라고 잠시 삐딱한 마음을 먹었으나 이내 그가 나사의 연구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사에서 화성까지 파견할 인력을 그리 허투로 뽑지는 않았으리라. 원래도 엘리트면서 생존 능력도 뛰어난 인력(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ㅋㅋ)을 장기간에 걸친 교육과 훈련을 거듭해 최종 선발 했으니까 각종 상황에 대한 대응도 훌륭하겠지.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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