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마무리하는 첼시세끼(3.22-3.28)

오늘/첼시세끼♬

2020. 3.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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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일요일


요 며칠 혼쭐이 나는 바람에 식사하는 게 꽤 버거웠다.

오전에 침대에 누워서 뭘 먹을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떡볶이를 사왔다.

떡을 씹어넘기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아서 아주 천천히 먹어야만 했다.

오전에 사와서 떡에 양념이 좀 덜 배긴 했군.


시간을 딱 정해두지 않고 뭔가 먹을 수 있다 싶을 때 내가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기로 했다.

일상이었던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참 기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다.

맛있는 요리, 군침도는 음식으로 인지하고 있던 것이 딱딱하고 말랑한 덩어리와 액체의 혼합물이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식사했다.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쯤은 해결된 것 같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기다려주는 일이다. 돌아올 거니까.


저녁은 순대를 사와서 먹었다.

1인분 기준으로 받은 건데 양이 좀 많아서 다 먹기 버거웠다. 차라리 이럴 땐 남기는 게 나은데 아무 생각 없이 다 먹고 조금 후회했다.


3월 23일 월요일


다행히 아침 시간대에 식욕이 좀 생겨서 햇반 데워서 곰탕과 김치, 젓갈을 꺼내어 먹었다.

어제 저녁을 교훈 삼아서 밥은 절반만 먹었다, 아주 천천히...

포만감이 드는 걸 못 견디는 게 문제인 듯 싶어서 완전히 배가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았다.

소화가 더디 되더라도 기다려야지 생각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점심은 모닝빵에 토마토 한쪽 썰어넣으면서 남은 토마토와 딸기를 씻어서 곁들였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 위주로 복기하는 중이어서 대부분 여러 번 즐겁게 먹은 메뉴 위주로 식사하고 있다.

내 몸에 도움이 될 요리이니 동반자로 인식해야지,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샌드위치를 먹었다.

배가 차는 느낌이 아직 싫긴 하지만 기다리면 편해지겠지 하면서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려고 계속 생각했다.


아침에 먹고 절반 남은 햇반을 데워서 저녁에 마저 먹었다.

양파와 파 듬뿍 넣고 매콤한 제육볶음.

소스가 내 입에는 좀 많이 매웠지만 천천히 씹어서 다 먹고나니 왠지 개운해졌다.


3월 24일 화요일


아침에 뭘 먹을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반숙으로 부친 달걀과 짭짤이 토마토 두 개 썬 것을 먹었다.

단백질도 있고 상큼하고 신선한 식사였다.

내 몸에 도움을 줄 음식이니까 사이좋게 지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씹어삼켰다.


점심도 많이 공들여서 차렸다.

생연어 사온 것 일부는 썰어서 회로 준비하고, 나머지는 가볍게 구워서 샐러드와 함께.

마스크 사러 나갔다오는 김에 사온 미도어묵과 밥을 함께 천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저녁은 남은 연어와 어묵에 젓갈 조금 올린 밥.

아직 음식과 나의 사이는 조금 냉랭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화해를 시도중이다.


3월 26일 수요일


아주 좋아하는 빵을 굽고 버터와 잼을 곁들여먹었다.

아끼는 캡슐로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차가운 카페라떼도.


점심은 남은 미도어묵과 낙지젓갈에 밥.


이날 공부하던 교재를 마쳐서 책거리 겸 치킨을 사왔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천천히 먹고 포만감이 생기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독극물을 삼키는 게 아닌 이상 음식은 해로운 게 아닌데 조금 배가 부르면 그 느낌을 없애버리려고 조바심을 내는군.

다행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반납하지도 나를 책하지도 않았다.

좋아. 이건 긍정적인 신호다.


3월 26일 목요일


치킨 먹은 다음날 아침도 어제와 똑같다.

버터 옆에 라즈베리 잼 흘린 건 불필요하게 인간적인 모습이구먼.

구워진 빵 냄새를 맡으니 행복해졌다.

긍정적인 기억이 있는 음식 위주로 먹으면서 반성 대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점심은 닭고기에 대파와 버섯 넣고 매콤하게 볶아서 밥 조금.


저녁에 남은 소고기를 볶아서 타코를 만들어먹었다.

잎채소 조금 넣어야할 것 같은데 고수가 없어서 대신 셀러리를 넣어보니 꽤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날은 폭탄이 터졌다. 사진은 남기지 않았지만.

햇반 세 개 뜯고 달걀도 세 개 깨서 간장과 들기름을 넣고 비볐는데... 나도 이걸 쓰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도 식탐과 제 정신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고 뜯은 햇반은 다 반씩만 덜어넣었다.

비벼놓은 밥은 절반 정도 먹다가 버리고... 내가 복기하면서도 참 괴상하다 싶긴 하다.

어쨌든 본인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과하게 마구 욕심내서 먹고 직후에 후회하고 다시 반납하고 이런 패턴이 섭식에서는 최악이다.

검정치마의 <어떤 날>을 들으면서 아, 내 얘기군 싶었다. "어떤 날은 더 하고, 어떤 날은 덜 하고."


3월 27일 금요일


전날 터뜨린 폭탄 덕에 속이 불편해서 일어나자마자 소화제부터 찾았다.

어제 바닥을 찍었다고 오늘 굳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지.

뜯겨서 반씩 남아있는 세 개의 햇반을 보니 괜히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냥 싹 버렸다.

넘어진 나를 일으키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식사했다.

전날 타코 만들고 남은 아보카도와 살사 등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역시 타코 재료는 또띠아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씻기 싫고 가만히 침잠하고만 싶은 날이었으나 겨우 몸을 일으켜 좋아하는 록시땅 장미향 샴푸와 샤워젤로 말끔히 씻었다.

오랜만에 눈썹도 간단하게 그리고 아끼는 틴트로 입술을 물들였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캐시미어 니트와 다이어트 했을 때 산 청바지도 입었다.

살이 조금 붙었군. 그래도 청바지는 아직 입을 수 있으니 그럼 괜찮네.

아끼는 반지와 그에 어울리는 귀걸이까지 끼고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놓았다.

후추는 냉장고 위에서 졸고, 밖에는 살구꽃과 벚꽃이 피어있고, 참새는 떼지어 모여서 지저귀고... 지금 이 순간은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시 쯤 점심을 먹어야지 하고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뭘 먹고 싶은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침대에 엎어져있다가 2시 쯤 느릿느릿 움직였다.

식재료와 반조리 식품은 차고 넘치는데 입에 넣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1/4쯤 남은 플레인 요거트가 눈에 보여서 그래놀라 한 줌 넣고 블루베리 잼 한 숟가락 더했다.

여느 때처럼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수는 있었다.

저녁에는 먹고 싶은 게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도미노는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봤는데 미트미트미트 피자의 토핑 씹는 맛이 아주 좋았다...만 죄송하게도 두쪽 먹고 바로 또 반납해버림.

그러고나서 남은 피자를 한쪽 빼고 다 먹어버렸다.

여기서 만약에 한 판 남김 없이 다 먹고 다른 음식도 갑자기 막 찾아서 먹고 이러면 최악인 건데 다행히 그 지경까지 가진 않았다.

식사를 과하게 하긴 했지만 반납은 처음에 한번만 했고, 식사가 끝난 뒤에 또 음식을 마구잡이로 폭식하지 않았으니 그건 잘했다.

이번주는 반납 얘기가 자주 나와서 죄송합니다...


3월 28일 토요일

소화제를 먹고 잤기 때문에 일어났을 때 속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날 먹은 샌드위치는 아보카도까지 넣은 게 다소 과하게 느껴져서 오늘은 토마토, 로메인, 양파 정도의 채소에 햄만 넣었다.

일리 캡슐 넣은 카페 라떼도 먹고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감정을 살살 구슬러서 계속 데리고 가야지.


점심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XO소스 크림파스타.

통통한 새우와 졸깃한 오징어를 듬뿍 넣어 먹었다.

느끼함이 정수리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긴 했지만 면을 적게 넣어서 그래도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식사할 수 있었다.


저녁은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타코!!

두 개 먹은 게 반납의 원인이 아닐까 싶어서 하나만 준비했다.

하지만 듬뿍 넣은 재료 덕에 또띠아가 완전히 말리지 않았으니 절반만 성공.

그래도 타코의 원형은 반달형 쉘이니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케이준 시즈닝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집에 있는 시치미를 이 대신 잇몸으로 씹는 격으로 썻더니 상당히 그럴듯 했다.

다행히 배가 차도 반납하지 않았다. 아주 잘했어.


여기서부터는 이제 번외편 잡담.


요 며칠 꿈에서 빵이나 고기를 엄청나게 먹어버린다든지, 커피를 끝도 없이 추출해서 바닥에 다 질질 흘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다.

너무 멍청하게 느껴지는 일을 저지른 내 자신이 미워져 소리 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물론 이것도 꿈이다.

꿈 속에서 내내 어린 아이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을 구르고 끝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탓했다.

무의식이니 막무가내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의식 속 나를 계속 아껴주면 무의식 속 나도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날그날 먹은 걸 몽땅 기록하진 않아도 일단은 남겨둔다. 괴롭지만 나를 위해 해야만 한다.

가시밭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날카로운 가시들이 온 몸을 긁고 찔러온다.

고전 동화 <백조 왕자>에 나오는 막내딸처럼 쐐기풀로 된 옷을 짜고 있는 기분이다. 이건 날 위한 것이지만.


모순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이렇게 나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최악이든 뭐든 스스로를 감추거나 덮어버리고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내가 겪는 문제와 마주보려고 노력중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싫은 하루도 그래서 굳이 더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싸우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건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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