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SF]타임머신 by 허버트 조지 웰스(펭귄클래식 100)

2019. 2. 20. 06:30

SF 명예의 전당 시리즈를 통해 접했던 『타임머신』, 그 이전에는 갈리마르 출판사 판본으로 읽어보았다. 펭귄 클래식으로 다시 만나보는 감회가 새로웠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편안하고 반가웠다.


허버트 조지 웰스 Herbert George Wells(1866-1946)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66년 영국 켄트에서 출생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열세 살부터 포목상 도제, 초등학교 교생, 약제사 조수 등으로 일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후 어머니의 도움으로 다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나, 생물학과 동물학 외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런던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1895년 『타임머신』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냈고, '과학소설'의 창시자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그 후 내놓은 『모로 박사의 섬』(1896), 『투명 인간』(1898), 『우주 전쟁』(1898), 『달 세계 최초의 인류』(1901) 등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본저 책날개 인용 및 2차 가공

 

SF소설 : 과학적 추론의 문학적 서사화

『타임머신』은 액자 형식의 소설이다. 1,2장과 맨 끝의 12장 중간부터는 서술자인 '나'가 시간여행자의 설명을 들으며 기록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고, 3장부터 12장 초반까지는 타임머신을 개발한 시간여행자 본인의 입을 빌려 직접 서술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작품 서두에서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뿐만 아니라, 이후 시점을 바꾸어 주인공의 경험과 심리 상태를 읽는 이에게 보다 실감나게 전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한때는 시간 여행을 구현하는 수단 중 꿈과 혼수상태가 으뜸으로 꼽혔던 적이 있었다. 무의식에 기반한 예지몽은 당대 사람이 꿈을 일종의 초자연적 계시로 받아들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웰스의 『타임머신』은 꿈이라는 정신적 능력과 주관적 상상의 세계에 갇혀있던 시간여행의 개념을, 과학 기술로 형상화된 물리적 여정으로 구현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웰스는 작품 속 주요 개념에 면밀히 계산된 명칭을 붙임으로써 그가 의도한 바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가정부 '워쳇 부인'(Mrs. Watchett, 영매술, 혹은 밤에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의미)의 이름에서부터 묘한 신비함이 느껴진다. 미래의 종족인 '엘로이'(Eloi, 엘리트와 구약성서의 야훼를 칭하는 elohim을 연상), '몰록'(Morlock, 마법사인 warlock과 가나안의 음탕한 신 Moloch을 연상)은 그 특성을 잘 반영하는 명칭을 갖고 있다. 주인공의 애인 위나(Weena) 역시 그 이름 때문에 wean 혹은 weaner가 떠올라 그녀의 유약한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러한 도구들은 독자들이 막연하게만 여기던 시간여행의 개념을 보다 친숙하게 느끼게끔 끌어다놓는다.


엘로이 VS 몰록 : 문명의 진보와 인류의 퇴보

시간여행자가 미래 사회에서 제일 먼저 맞닥뜨린 인류는 '엘로이 Eloi'였다. 1.2미터 정도 되는 아담한 키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하얗고 매끈한 피부와 섬세한 사지를 보면서, 그는 이들이 마치 '드레스덴 도자기 같은 미모'를 지녔다고 묘사한다. 그는 엘로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외모만 도자기처럼 유약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질 자체가 상당히 퇴보했다고 판단한다. 엘로이들은 호기심도 끈기도 부족해 학습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으며 지능도 낮기 때문이다


그는 진지하고 지적인 미래 인류를 기대했다가, 천치에 가까울 정도로 천진난만한 엘로이들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다. 시간여행자는 고도화된 기술과 안정적 사회가 거꾸로 인류의 진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결론 내린다. 미래의 인간은 더이상 개량될 필요가 없는 나머지 이제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시간여행자가 내린 결론의 시비는 곧 가려진다. 그는 미래 사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타임머신을 도둑맞는데, 이를 찾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에서 엘로이들이 어둠과 지하 세계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된 우물 속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형체를 발견하고 그들이 몰록(Morlock)이라는 또다른 미래 인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는 몰록들이 타임머신을 지하로 옮겼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우물과 연결된 수로 속에 잠입한다. 몰록들의 소굴에서 시간여행자는 정체모를 고깃덩이를 발견하는데 나중에 그것이 엘로이의 신체 일부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엘로이와 몰록이 종래에는 귀족과 평민처럼 주종관계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체적 능력이 좀더 우수했던 몰록이 엘로이를 먹잇감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는 엘로이에 대한 연민과 몰록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는 현대의 인류에 좀더 가까운 엘로이의 생김새와, 마치 심해어처럼 창백하고 괴기스러운 몰록의 몰골도 한몫 했으리라. 끝없는 발전만 있을 것 같았던 인류의 미래가 종국에는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는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는 인류의 진보를 어둡게 보았다. 쌓아올린 문명이 필연적으로 무너져서 결국에는 그것을 쌓아올린 자들을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헛고생이라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듯 살아낼 도리밖에 없다.

- p.174 본문 인용